brunch

매거진 지금 여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슴푸레 Jan 16. 2024

개점휴업 중

  육 개월 만이었다. 먼저 식당에 도착해 주문을 하고 휴대폰에 눈을 주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경은 샘이 내 왼쪽 팔을 살짝 잡고 "샘!" 했다. 샘. 오랜만에 불리는 호칭. 선생님과 쌤이 랜덤하게 선택되어도 샘의 빈도가 현저히 높았다. 샘: 하고 길게 나를 부르면 목마른 자의 샘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쩐지 딱딱하고 거리감 드는 선생님이 뭉근히 끓인 스튜처럼 형체를 잃은 샘. 어쩌면 살면서 가장 오래 불렸을 샘.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를 만나면 몸속에 동지애가 급속도로 퍼진다. 애쓴다는 말이 호흡처럼 나온다. 자꾸만 상대의 어깨에 손을 얹게 된다. 거의 동기화 수준으로 지난 안부를 푹 빠져 듣고 전한다. 무슨 말을 하든 호의적인 모습에 매번 감동한다.


  점심시간 종료 15분을 앞두고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아쉽지만 이제 가야 해요. 하자 샘은 참 섬세해요. 했다. 세심과 섬세의 차이. 빈틈없음과 사려 깊음의 사이. 세심보다 섬세가 듣기 좋았다. 카페 문을 잡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턱이 있어요. 조심하세요. 말과 행동은 남편에게서 받은 친절의 모습이었다. 나는 달라져 있었다.


  개점휴업 상태다. 연초라 어떤 프로젝트에 들어갈지 정해진 바가 전혀 없다. 다른 사업 팀에 연락해 볼까 하다 만다. 필요했으면 벌써 연락했겠지. 판 다 짜여 있겠지. 한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현관 앞에 택배가 탑처럼 쌓여 있다. 남편에게 미안하다. 아직 올해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1년을 살아 놓고 뭘 그리 걱정해.와 언제 바빠질지 모르는데 지금 이 여유를 맘껏 즐겨. 사이를 무한 반복하다 휴대폰에 다시 눈을 준다. 김정은은 자꾸 왜 이런데. 주적이 어쩌고. 전쟁 시 공화국에 편입을 시키네 저쩌고.


어수선한 연초가 지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뭣이 중헌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