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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Jan 22. 2024

엄마는 왜 맨날 나한테 뭐라 그래요

  "제발 그만 좀 해!"

  "아니 내가 뭘요? 잘못은 쟤가 했는데?"

  "너 방금 그 표정이 뭐야."

  "아니이. 왜 엄마는 쟤가 잘못해도 맨날 나한테 뭐라 그러냐고요? 아 진짜아!"


  50분은 넘게 큰애와 옥신각신했다. 훈육이 아니라 싸움 수준이었다. 날선 말과 눈빛으로 으르릉대고 할퀴었다. 명백히 폭주였다. 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작은애가 화장실에 휴대폰을 들고 들어갔다. → 게임 계정을 로그인했다. → 게임을 하려던 큰애의 거실 컴퓨터에 작은애의 게임 계정 로그인 알림이 떴다. → 큰애가 나에게 이르듯 "엄마. 동생, 화장실에서 게임해요." 했다.


  평소 서로의 게임 시간에 민감한 둘은 심하게 견제했다. 뭔가 자신에게 불이익이라 생각하면 못 견뎌했다. 주로 작은애가 그랬고 얘길 들은 직후면 큰애에게 가서 "너, 어쩌고 저쩌고." 혼을 냈다. 큰애는 그간 쌓였던 불만을 화산처럼 터트렸다. 엄마는 동생만 예뻐한다면서. 똑같이 10을 잘못해도 엄마는 나만 9를 혼낸다고 했다. 왜 내 말은 듣지 않느냐고 했다. 동생이 긁어서 내가 화를 내는 건데 그건 안중에도 없이 현상만 보고 그러냐고 했다. 엄마 잘못은 없냐고 했다. 동생이 잘못해서 말한 건데 엄마가 갑자기 화낸 거라고 했다. 엄마가 나한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억울해 죽겠다고 했다.


  동생이 화장실에서 나오면 얘기한다지 않았냐고 했다. 거실에 너와 나만 있으니 분란을 더 만들지 않으려고 너에게 말한 거라고 했다. 원인 제공을 동생이 했든 안 했든 간에 부모인 엄마에게 네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 불온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욕을 삼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앙다무는 게 잘한 냐고 했다. 매번 엄마가 너에게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부분.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하는 부분. 네 엄마니 정신 차리라는 부분. 그게 뭔지 정말 모르냐고 했다. 아무리 엄마가 네 맘을 못 헤아려서 억울하다 해도 발을 구르고 짐승 같은 목소리로 소리 지르면 안 된다고 했다. 그건 기본이라고 했다. 아빠한테는 못 그러면서 왜 엄마한테만 그러느냐고 했다.


  아빠는 화부터 내지 않는다고 했다. 둘 다 불러다 놓고 얘길 들어보고 똑같이 혼낸다고 했다. 적어도 아빠는 공평하다고 했다. 엄마는 동생만 사랑한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끝까지 몰아붙인다고 했다. 엄마가 그러니 내가 도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왜 원인을 따지지 않고 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나한테만 뭐라고 그러냐고 했다. 사과하라고 했다.


  온 아파트가 쩌렁쩌렁 울렸다.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었다. 서로의 잘못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아들애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나의 비논리적임을 털끝만큼지지 않고 말했고, 나는 아들애의 버릇없음과 실추시킨 부모의 권위에 대해 힐난하며 질리도록 말했다. 계속 러다가는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았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듣지 않았다. 아들애는 계속해서 발을 굴렀다.


  거리를 두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길게 이야기했다.


  "아들. 난 네가 힘들어. 네가 이상하다는 뜻이 아니야. 엄마와 너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이 달라서 힘들어. 엄마가 농담처럼 넌 T고 나는 F라서 힘들다고 얘기한 게 사실은 이런 거야. 무슨 문제가 발생하거나 일이 있을 때 엄마는 불부터 꺼야 해. 그런데 너는 원인부터 찾아. 아빠도 그렇고. 그래서 넌 아빠와 잘 맞고 엄마는 동생과 잘 맞지. 말 못 할 이야기를 동생한테 하는 거. 엄마와 딸 사이여서기도 하지만 성향의 문제가 더 커. 네가 보기엔 늘 너만 혼내는 거 같지만 동생이 잘못한 부분을, 네가 없을 때, 둘이 잘 때, 둘이 있을 때 말하기도 하고 혼내기도 해. 물론 너는 보이는 곳에서 늘 너만 혼나는 거 같으니 억울하겠지. 미안하다. 근데 그건 널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처음 낳은 내 첫 아들인데 왜 내가 널 안 사랑해. 널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널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데. 그건 오해야."


  "아들. 난 갈등이 힘들어. 네가 크게 말할 때마다 청력이 약하다고, 귀가 아프다고 하는 건 네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가 아니야. 엄마는 정말로 큰 소리가 싫어. 큰 소리가 나면 불안하고 확 긴장이 돼. 싸움이 시작된다 싶어서 너무 무서워. 그래서 너희들이 투닥대면 그만 안 하냐고 소리 지르는 거야. 싸움이 시작되기 전엔 늘 상대를 건드리는 말이 있고 그 말에 발끈해서 불꽃이 튀지. 그러다 상도 엎어지고 컵도 깨지고. 몸으로 싸우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고. 엄마는 그걸 많이 봤어. 어려서. 그래서 너무 무서워. 큰 소리가 나면. 너희가 싸우면 동생은 외할머니 같고, 너는 외할아버지 같아. 엄마 몸은 커졌는데 마음속 아이는 크지 않았어. 그래서 그때마다 그 애가 찾아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아이가. 지금은 몸이 커서 네 말대로 해결도 할 수 있는데 마음은 그대로라서 방법을 몰라. 어른들의 일이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때마다 무기력하고 무섭고 화나고 슬펐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싸우지 말라고 울면서 소리치는 것밖에 없었어.

  엄마는 정말로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어. 그래서 아빠랑 결혼했고. 아빠는 다정하고 엄마처럼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아까 네가 엄마한테 선 넘듯 발을 구르고 노려보고 소리 지르고 욕하는 표정을 지으니 잘못 살았다 싶었어.  헛수고구나 싶었어. 너를 잘못 키웠다 싶었어. 절망적이었어."


  내 말을 들은 아이의 눈빛은 좀 누그러져 있었다. 그제야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엄마한테 함부로 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엄마가 나한테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다. 엄마는 불부터 끄는 게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앞으로는 불이 난 원인을 살피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아들애와의 한바탕이 있은 후 기진맥진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자기 고백 하듯 말을 늘어놓으니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두 눈이 퉁퉁 부었고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가가 쑥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공허하고 멍했다. 허기가 느껴졌다. 방전된 듯 안방에 들어가 누웠다.


  그리고 다운된 기분이 오늘까지 올라오지 않는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육아#내면아이를수천수만번만나는과정#아프지만다행인과정#사랑한다아들#그리고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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