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노래를 해 주렴 나나 나나나나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신형원의 <개똥벌레>를 열세 살 때 처음 알았다. 6학년 전체가 속리산으로 수련회를 간 1991년 유월의 어느 날이었다. 법주사를 구경하고 내려와 정이품소나무 앞에서 반별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주차장에서 조금 떨어진 그늘에 모두 앉아 쉬고 있을 때 2반 담임 선생님이 앞으로 나왔다. 스케치북을 넘기며 <개똥벌레>를 불렀다.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가사에 맞는, 그리 어렵지 않은 율동을 슬로 모션으로 했다. 선생님을 따라 세 번쯤 반복하자 금방 익었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를 할 때는 쿵쿵. 짝짝. 두 손으로 허벅지 두 번, 박수 두 번을 치고 왼쪽 친구 한 번, 오른쪽 친구 한 번. 어깨를 잡아당겨 못 가도록 애원하는 동작을 했다. 노래가사에 자꾸 상상이됐다. 멜로디는 밝았지만 가사는 슬펐다. 개똥벌레는 쇠똥구리처럼 똥을 굴리며 살까. 냄새가 나서 친구가 없는 걸까. 볼품이 없어 새들도 피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노래를 했다. 그러다 그 노래가 싫어졌다. 중학교 체육 대회에서 가끔 반별 응원가로 부르기도 했지만 나는 흥이 나지 않았다.
개똥벌레가 반딧불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반딧불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형설지공'이라는 사자성어를 한문 시간에 배울 때에나 반딧불이란 말을 알았다. 밤이면 초록색으로 반짝이는 벌레가 있다니. 뭔가 동화적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그런 벌레를 잡아 어두운 밤에 책을 읽었다니. 빛이 얼마나 밝을지 상상이 안 됐다. 이름도 예쁜 반딧불. 딱 한 번만 직접 봤으면 했다. 한문 선생님은 반딧불을 개똥벌레라고 한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반딧불과 개똥벌레는 별개의 단어로 머리 속에 자리 잡았다.
반딧-불이
『동물』 반딧불잇과의 딱정벌레. 몸의 길이는 1.2~1.8cm이며, 검은색이고 배의 뒤쪽 제2마디에서 제3마디는 연한 황색으로 발광기가 있으며 머리의 뒷부분이 앞가슴 밑에 들어가 있다. 성충은 여름철 물가의 풀밭에서 사는데 밤에 반짝이며 날아다니고 수초에 알을 낳으며 애벌레는 맑은 물에서 산다.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개똥벌레, 단조, 반디, 반딧벌레, 반딧불.
충격이었다. 십수 년 전, 사전 원고에서 '반딧불이'의 첫 번째 동의어로 '개똥벌레'를 마주한 순간은. 믿을 수 없어 백과사전을 찾았다. 다 자라선 숲속에서 무리를 지어 산다고 쓰여 있었다. 신형원의 <개똥벌레>는 반딧불이와 다른 종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노래 속 개똥벌레는 작사가가 상상으로 만든 가상의 벌레, 스토리를 가진 벌레였다. Luciola cruciata가 학명인,국어사전과 백과사전의 반딧불이가 아니었다.
배 끝에 밤이면 초록색으로 반짝이는 불이 있어 반딧불이라면서, 같은 대상을 두고 지독하게 '개똥벌레'라 이름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하필 개똥인가. 밤에는 날고 낮에는 눈 지 얼마 안 된 똥 밑에 숨어 지내서라는 설과 옛날에는 흔해서 지천에 깔린 벌레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웹에서 떠돌았지만 신뢰하기는 어려웠다. 잡으면 개똥 냄새를 풍기는 걸까. 그런 설명은 백과사전에 없었다. 더군다나 애벌레는 맑은 물에서 산다고 했다. 더러운 것과는 크게 상관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개똥벌레의 사진을 본 순간, 아! 했다. 까맣고 길둥근 반딧불의 몸은 개똥 모양과 비슷했다. '개똥벌레'의 방언들도 '개똥버러지', '개똥버레', '개똥벌거지', '개똥불' 등 '개똥X'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아 그렇다면, 신형원의 <개똥벌레>도 이해가 되었다.벗고 나온 번데기를 '개똥 무덤'이라 표현한 거라면. 새들도, 다른 동물 친구들도 반딧불이의 모양이 '개똥'을 닮아서 싫어한 거라면. 단지 겉모습 때문에 곁에 아무도 없는 거라면. 개똥벌레는 그렇게 울다 잠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모르는 개똥벌레들도 다른 풀숲에서 숱한 밤 울고 있을 거였다. 나의 빛을 알아봐 줄 이를 기다리며 매일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