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하 부디 그 선을 넘지 마오

by 어슴푸레

선(線)을 넘다는 말.

언제 처음 관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는지 궁금한 말.

<연세한국어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있으나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는 아직 없는 말.


한도나 경계를 넘는다는 뜻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 차리는 체면이나 예의를 벗어던지고 이쪽으로 넘어온다는 것이어서

아직 상대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선 안쪽의 사람은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 된다.


자기 편한 대로 '선을 넘고'

시간 때우기식으로 상대에게 '선 넘는' 질문을 건네고

언제 그랬냐는 듯 투명하고 멀끔한 얼굴로 고쳐 대하는 사람은

그래서 마주할 때마다 당황스럽고 또 당황스럽다.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무례함을 솔직함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대개 '선 넘는' 질문을 많이 한다.

'나는 네게 관심이 있어.'라는 강한 비언어적, 언어적 메시지를 보내거나

'네게는 관심 없고 내 미래가 막막해서 묻는 거야.'라는 분위기를 온몸으로 풍기며

개인의 역사를 자의적으로 요약해 듣고 아무렇게나 머릿속에 저장했다 지운다.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 만나도 비슷한 질문을 하고

"아, 그때 그렇다고 했었지?"라며 자신의 망각을 상대에게 애써 어필한다.


사실 '선을 넘다'라는 말이 부정적으로만 쓰이는 건 아닐 텐데

나 역시 어떤 이에게 '내 사람' 범주에 들고자

스스로 '선을 넘고' 나의 '상처받은 영혼'을 보여 준 적도 있었을 텐데

왜 안에선 거의 반사적으로 정색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인지.


"님하 부디 그 선을 넘지 마오."

나는 님의 가십거리가 되고 싶지 않으니.


일로 만난 사이

바꿔 말해 우리는 일로만 엮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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