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이다'와 힘의 논리

by 어슴푸레

"나, OO한테 고백했는데 단칼에 {까였어}."

"프로젝트 시안, 과장님께 대차게 {까이고} 나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더라."

"출판사에 수도 없이 {까인} 내 원고들."


2005년 무렵에 첫 쓰임이 보이기 시작하니 단어의 나이가 벌써 열일곱 살쯤 된다.


처음 '까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생경한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동료들끼리 문법에 맞는 말이니 아니니, 어원이 이거니 저거니를 두고 짧게 의견을 나눈 기억도 있다. 그러나 나는 '까이다'가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아 의미가 분화되어 쓰일지 꿈에도 몰랐다.


그러면 '까이다'가 '거절당하다', '퇴짜 맞다'의 의미를 가지면서 하고많은 형태 중에 '까이다'를 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까이다

(속되게) 치이거나 맞아서 상처가 나게 되다. ‘까다’의 피동사.

¶무릎이 {까이다}./총의 개머리판으로 정강이가 {까였다}./우리들 중의 한 애가 구둣발로 모질게 {까인} 경우가 그것이었다.≪이동하, 장난감 도시≫

- <표준국어대사전>


'까인' 무릎이나 일명 조인트 '까인' 정강이 등, '까이다'의 주어(피동주)는 신체 부위로서, 외부의 힘을 몸으로 받는다. 즉, 다른 사람에게 세게 걷어차이거나 맞는 등 물리적 상해를 당한다. 상해를 당하면 피나 상처가 나고 그 부위가 욱신욱신 아프다.


평소 호감을 갖거나 사랑의 감정을 품어 온 상대에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고백했다. 그런데 상대는 나와 마음이 다르다. 그는 내 마음을 받아 주지 않는다. 거절당한 나는 상대로부터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다. 그 '얼얼함'을 '까인 무릎'이나 '조인트 까인 정강이'의 통증과 비슷하게 인지한다. 즉 구애를 했으나 거부당한 사람은 '거절당함'을 '얻어맞음'으로 받아들이고, 크든 작든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다시 말해 '거절당함'은 '몸'이라는 구체에서 '마음'이라는 추상으로 환유의 과정을 거치는 동시에, '상대에게 맞아 상처 입다'라는 의미를 공유함으로써 언중이 '까이다'라는 형태를 취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직장의 상사나 특정 집단의 결정권자는 나보다 힘이 세다. 즉 우위에 있다. 나의 아이디어를 묵살할 수도 있고, 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에 나는 그의 선택에서 이른바 '픽(pick)'을 기다려야 하는 '을'의 처지다. 근래에 '까이다'가 취업 시장 등에서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고 {까였어요.}"로까지 쓰이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고 남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까이다'가 더 이상 의미를 확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까이는' 주어(피동주)가 더 많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도 없이 나를 '까대는' 냉혹한 사회에서 '까임'을 반복하고 주저앉고 멍해지고 무기력해지는 일이 적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소망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기를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