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멈춰지는 '깊다'

by 어슴푸레

깊다[깁따]


단어에도 차원이라는 게 있다면 '깊다'만큼 바닥을 쉬이 알 수 없는 말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깊다'라는 말을 발음할 때

'깊[깁]'에서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다.

'ㅍ'이 'ㅂ'으로 중화되면서도 입술소리임은 잊지 않는 것처럼

위에서 밑까지 멀게 멀게 길어져도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는 것처럼

'깊[깁]' 하고 숨을 모아 바로 [따]를 터트리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 더 내려가고만 싶다.


그렇게 내려가다 보면

여러 켜로 쌓인 내가 보이는 것도 같다.


딸깍, 뚜껑을 젖히면 금세 흘러나오는 탄산 멘털 밑으로

조금씩 점도를 달리해 다져져 있는 퇴적토들이

빛을 감추고 잠들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더 깊어지고만 싶다.

깊이를 모르는 사람처럼

속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람처럼


깊이깊이

멀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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