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계셨어?”
“응. 지금 나갈까요?”
“아니. 푹 불어야 잘 밀리지. 나 밖에 좀 놀다 오려고.”
“그래요. 그럼 언제쯤?”
“한 15분 뒤에 올게.”
사우나에 들어가 땀을 흘리며 멍하니 앉아 있는데 세신사 한 분이 불투명한 유리문을 열더니 단골로 보이는 50대 후반의 아주머니와 몇 마디 주고받고 문을 닫았다. 20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유독 푹 불어야 잘 밀린다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순간 바닥이 까맣게 눌어붙어 물에 불리는 형상의 냄비가 떠올랐다. 강한 불 위에 올려진 채로 오래 방치되었다 식으면 불과 부대끼던 내용물은 뭐가 됐든 덩어리나 재로 남는다. 아차 해도 이미 늦은 법. 여기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 다 탄 냄비를 버리거나, 탄 찌꺼기들을 벗길 수 있을 때까지 냄비를 한정 없이 물에 불리는 것. 못 쓰게 된 냄비를 그나마 다시 쓸 수 있게 하는 건 물이 제1 조건. 시간은 그저 도울 뿐.
사람의 마음 밭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안에서 끓던 것이 식으면 그 화는 어떤 식으로든 가슴에 남는다. 때로 ‘스트레스성 위염’이라는 병으로 몸에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그 화는 쉬 해결되지 않은 채 쌓이고 쌓인다. 그런 사람을 두고 맺힌 게 많다고도 한다. 맺힌 건 풀어 줘야 하는 게 이치인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도 타 버린 냄비처럼 시간만 흐른다고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시간이 더하는 만큼 그 덩어리와 재들은 점점 더 굳는다. 그러고 물에 담근다 해도 냄비가 깨끗이 닦일 리 없다. 역시 긁힌 자국, 거뭇거뭇한 얼룩들이 흔적으로 남는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물‘이다. 딱딱한 것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힘은 형체도 없고 냄새도 없는 물에 있다. 안에 쌓인 화를 남에게 이야기하거나 가만히 지켜보다 흘리는 눈물은 그래서 힘이 세다. 술도 그 역할을 한다. ‘물, 술’. 무릇 흐르는 것들은 소리도 멈춤 없이 흐른다. 소리만큼 아름답다.
응어리진 마음이 풀리면 우리는 날아갈 듯하다고 한다. 뭔가 꽉 막혀 있던 것이 뚫리거나 숨 쉴 만하면 후련하다고도 한다. 뜨겁게 달구고 달궈진 사물이 끓는점을 넘어선 채 장기간 방치되었을 때 대개는 덩어리가 된다. 이를 ‘응결’이라고 하는데 사람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응결된, 덩어리진, 상처받은’ 마음이 다시 ‘기화된, 해소된, 회복된’ 마음이 되려면 반드시 물에 녹아 흐물흐물해지는 상태를 거쳐야 한다. 그 상태로 가는 시간이 앞당겨져야 후유증이 덜 남는다.
ps. 힘내요, 샘. 우리, ‘아름답고 따뜻한’ 커피 한잔 조만간 또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