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지나다니다 골목에 꽃나무 많이 키우는 할머니 댁 화분 봤는데 더워서 그런지 많이 탔더라고.
-꽃이 타는 건 어떤 거야? 처음 들어봐. 시든 거랑 다른 거야?
-왜 햇빛 심하게 받으면 불에 탄 것처럼 거멓거나 누렇게 변하잖아. 장미원에서도 봤는데. 나만 쓰나?
-'타다' 기본 어휘로 그렇게 쓴다고? 개인어 아니야? 지역어인가? 어머니도 쓰시나?
-쓰거든?(동시에 남편은 두 눈에서 무서운 불을 쏘았다. ㅠㅠ)
-아들. 넌 쓰니?
-아뇨. 타들어 간다고는 해도 꽃이 탄다라고는 안 하는 거 같아요.
-타들어 간다나 탄다나 '타다'가 들어가니 똑같지 뭐.
-아니이. 기본 어휘로 '타다'를 그렇게 쓰는 거랑 '타들다' 복합어로 쓰는 거는 다르지.
-뭐가 달라. 거참 어렵네.
-사전 찾아봐요, '타다'에 그런 뜻이 있는지.
-어. 없네.
-그니까. 비유적으로 쓰는 말인 것 같아.
-사전에 없을 수도 있지!
-쓸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되게 생소하다니까. 안 되겠다. 내일 당장 말뭉치부터 찾아야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틀렸다. 남편이 맞았다. ㅠㅠ
세종 말뭉치와 모두의 말뭉치에는 안 나왔다. 그러나 웹에서는 나왔다. 특히나 원예 쪽에서 많이 쓰는 듯했다. 그러다 해당 의미의 전문어를 만났으니 그것은 '볕 데임.'
국어에서 쓰이는 '(볕에) 꽃이 타다'가 영어 대역 표현에 있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꽃만 타나. 잎도 타고, 다육 식물도 타고, 채소도 타고, 과실도 탔다.
이러한 '볕 데임' 현상은 한여름에 제일 심하고, 봄가을이어도 한낮에 갑자기 화분 등을 밖에 내놓으면 꽃이나 잎이나 열매가 햇볕에 화상을 입는다고 했다. 바람이 통하지 않고 습도가 높아 타 버린 선인장이 그랬고, 갈색으로 멍든 한여름 복숭아가 그랬다.
언어 현실을 오롯이 담는 말뭉치를 만들거나 확보하는 건 이렇게나 어렵군 하는 사이, 귀에 익지 않은 말이라고 무찔러 버린 아집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불에 타는 것과, 피부가 볕에 타는 것과, 마음이 타는 것과, 입술이 타는 것과, 농작물이 타는 것 사이에 겹치면서도 애매한 경계에 걸쳐 있는 것이 '꽃이 타다', '잎이 타다'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 중 어느 한쪽의 뜻풀이로 몰 수 없는 용법이니 뜻을 하나 더 추가하거나 뜻을 수정해서 보완해야 할 것도 같고.
균형성과 대표성을 두루 갖춘 말뭉치를 토대로 하는 사전 편찬이라는 것. 참 지난하고도 가슴 뛰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