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30일 마감할 일이 있어 동네 도서관에 갔다. 마침희망 도서로 신청한 <내가 만드는 사전>의 예약 대출 마지막 날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핸드폰 앱을 열고 서울시민카드 바코드를 스캐너에 대며 속으로 바랐다. 나를 못 알아보기를. 제발 제발 제발.
-혹시 작가님 아니세요?
-앗.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성함이 같고 책에 초등학생 자녀분과 썼다고 되어 있어서요.
-아. 하하하하. 네. 고맙습니다.
민망해서 책을 받자마자 재빨리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고맙다니.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건넨 고맙습니다 다섯 음절에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내심 알아봐 주기를 바랐던 건가. 그래서 고맙다고 한 건가. 아오 창피해.
2주 전, 어린이 도서관이기도 하고 낸 책의 주된 독자층이 초등학교 저학년이기에 '내 손으로 직접' 희망 도서를 신청했었다. 처음엔 기증을 할까 생각했지만 받아 줄지도 모르고 그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용기가 필요한 일이어서 두 눈 질끈 감고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희망 도서를 기입했다. 엄마 손을 잡고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이나 각종 시험공부를 위해 몰두 중인 성인 남녀의 눈에 띄어 한 번씩 잠깐 동안이라도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마음이 부끄러움을 넘어섰기에 가능했다.
작가님이라는 호칭은 들을 때마다 어색하다. 20년 가까이 들어 온 '박 샘(쌤)', '박 선생님', '박 선생'을 이길지도 알 수 없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박 작가님" 할 때마다 "어우야"가 절로 나온다. 쓰는 사람이 작가지 뭐 별건가 싶다가도 그렇게 불리는 건 여러모로 생경하다.
점심시간. 경은 샘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환한 미소로 방긋방긋 웃던 경은 샘은 가까운 듯 먼 것 같다며 관조하는 표정으로 줄곧 나를 '감상'했다. 멀긴 뭐가 멀어요. 책을 내든 안 내든 박선영인 건 똑같은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곱고 고운 장미 한 다발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작가와의 만남'이란 명분으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책에 사인을 해서 건넸다. 샘 사인 많이 해 봤죠. 멋있다. 아, 아뇨.... 기분이 이상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진흥과 선생님들을 마주쳤다. 유원 선생님이 밥을 다 먹고 우리 자리로 와서 손을 잡고 축하한다고 말했다. 너무나 밝은 얼굴로 웃어 주니 어쩔 줄을 몰랐다. 입에 음식이 있어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얼굴 좋아 보여요. 책을 내서 그런가. 아.... 그래요? 아하하하. 고마워요. 또 봬요. 진흥과 선생님들이 자리를 떴다.
앞으로 작가가 부캐가 될지 본업이 될지 알 수 없다. 연구자로서의 길은 아득하기만 하고 길을 나선 이상 어떻게든 도착을 해야 하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