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어 아니야 개인어?('꽃이 타다'의 쓰임을 동조하지 않고 했던 내 말을 고대로 따라 하는 센스 보소!)
-쓰지 왜? '지팡이 한 자루' 하듯이 '무 한 자루' 하잖아. '옥수수 세 자루'도 쓰는데?
-그렇게 쓰면 나처럼 사람들이 헷갈린다니까.
-우리 외할머니도 쓰셨어. "옥시시 쪘응께 한 자루 먹어 봐라잉." 하셨다고.
-그럼 방언 아닙니까? 이제 거의 안 쓰이니 고어거나.
-쳇. 집에 가면 바로 말뭉치 찾는다, 내가!
-그전에 내가 먼저 찾지 뭐.(남편이 휴대폰으로 검색을 했다.)
-내 말이 맞네. 사람들이 헷갈려 할 수 있어 이때의 '자루'는 '개'로 통일했다고 돼 있네.
-통일? 표준어 규정에 있나? 기억에 없는데.
이야기는 이렇다. 어제 어머니께서 새로 사신 배추김치 한 통, 노각무침 조금, 찐 단호박 반 개, 찐 옥수수 세 개를 가져다 주셨다. 그중에서 옥수수와 단호박은 막 쪄서 먹음직했다. 저녁을 먹어 배가 부른데도 옥수수를 반으로 잘라 앉은자리에서 먹었다. 큰애가 하나를 더 먹었고 오늘 오후에 일하다 출출해서 내가 한 개를 먹어 현재 반 개뿐이다. 사물을 세는 단위로 한자어 '개'가 폭넓게 쓰이기는 하지만 우리말이 주는 어감과 발음이 좋아서 비슷한문맥이라면 그에 맞는 고유어를 쓰는 편이다. 의식적일 때도 있고 '옥수수 세 자루'처럼 어릴 때부터 써서 입에 붙은 말을 무의식적으로 쓸 때도 있다.
남편이 이해한 '옥수수 세 자루'는 '속에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헝겊 따위로 길고 크게 만든 주머니.'를 뜻하는 단위 명사이고, 내가 말한 '옥수수 세 자루'는 (옛말 투의) '길쭉하게 생긴 물건, 도구, 채소.'를 뜻하는 단위 명사였다. 현행 국어사전은 '옥수수 세 자루', '무 한 자루' 등의 '자루'는 용례와 뜻풀이에서 배제하고 있었다. '연필, 총, 창, 호미, 도끼, 칼'만을 용례로 보이고 '필기구, 연장, 무기' 등을 세는 단위로만 풀이하고 있었다.
'무 한 자루', '옥수수 세 자루'처럼 예전에는 기름하게 생긴 사물에도 두루 쓰이던 '자루'가 무엇을 담는 포대의 '자루'와 형태가 같아 의미 간섭이 일어나면서 그 쓰임이 밀려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낱낱을 뜻하는 '옥수수 세 자루'의 퇴장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밤. 십수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문득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