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를 맞추다

by 어슴푸레

"나이도 에린 것이 비유칠도 잘허고 여간 별것이다야."


어리지만 철이 다 들고 속이 꽉 참을 이르는 전라도식 표현. 표준어로 번역하면 "나이도 어린 것이 남의 비위도 잘 맞추고 엄청 대단하다." 정도. 주로 외할머니가 큰이모의 둘째 아들인 준호를 칭찬할 때 쓰셨다. 사투린 거 같은데 의미를 정확히 몰라 눈치로 대충 알아들었다. 이제는 '비유칠'의 '비유'가 '비위(脾胃)'를 다르게 발음한 것임을 알지만, 어릴 땐 '비누칠'도 아니고 '비유칠'이 대체 뭔가 했다.


천성적으로 나는 남의 비위를 맞추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위아래로 남자 형제가 있는 고명딸임에도 애교라고는 눈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매사에 뚱하고 한없이 쭈뼛거렸다.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게 싫었고, 거울 속의 나는 너무 못생겨서 마주할 수가 없었다.


"언제 철들래?"라는 말을 밥 먹듯이 들었고, "쪼그만 게 응등해 갖고." 엄마의 못마땅한 표정을 원없이 보았다. '살갑게', '알아서', '척척척'을 한 번도 해 내지 못했다. 당연했다. 나는 겨우 국민학생이었다. 억울했다. 왜 자꾸 비교를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빠가, 동생이, 친척이, 친구들이 시시때때로 나와 견주어졌다.


아들과 딸을 둔 지금의 나 역시, 은연중에 혹은 의도적으로 두 애를 비교한다. 아마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너의 이런 면이 부족하니 오빠에게서 배우렴, 너의 이런 면은 꼭 고쳐야 하니 동생에게서 배우렴. 나의 그런 면을 다르게 특별히 봐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이 생각은 지금의 내 아이들이 나를 향해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비위가 약했다. 비유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그랬다. 냄새에 취약했고, 익숙지 않은 맛에 금방 속이 뒤집어졌다. 비싸서 송이째 못 사고 트럭에서 한 송이씩 바나나를 엄마가 사 주어도 나는 한 입 먹고 더 못 먹었다.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물컹한 식감이 더 이상의 저작(咀嚼)을 가로막았다. 당시 버스 요금보다 네 배나 비싼, 빙그레 딸기 요플레도 맛이 이상해 한 입 먹고 말았다. 비주얼도 맛도 영락없이 상한 우유 같았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 화성역 근처의 뉴코아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에서 피자헛 조각 피자를 먹게 되었을 때도 다 익은 피망과 페이스트소스, 페퍼로니의 맛이 너무 역해서 딱 한 입 먹고 고개를 저었다. 없는 살림에 기껏 사 준, 비싼 음식들을 '한 입만' 먹고 마다하는 딸이 엄마로선 화딱지 나게 밉상이었을 거다. 그러나 나로선 호기심이 타고난 비위를 넘지 못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살면서 음식에 대한 비위가 좋아졌다는 것. 크게 가리는 거 없이 잘 먹게 되었다. 타고난 후각은 여전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비위 맞춤, 이른바 '비유칠'은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굳이 하고 싶지도 않다. 애당초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엔 글러 먹은 성정이다.


그럼에도 뭔가 비위를 거스르면 뒤도 안 돌아본다. 최대한 남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할 말을 하고자 하나, 타고난 지라와 위가 다르듯 나의 비위 맞춤이 남에게 흡족할 리 없다. 오랜 직장 생활, 뭔가 비위가 나빠지려 하면 내게 행복한 일을 떠올린다. 그리고 동료와 상급자의 비위를 긁거나 상하게 하는 언사는 되도록 삼가려고 한다. '비유칠'은 못 하더라도, 최소한 '미운털'은 안 박혀야 하니.


그렇다 해도, 비위 맞추는 일은 참 하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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