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폭 안기다/품에 폭 안다/팔에 폭 껴안다/소파에 폭 파묻히다.
잠이 폭 들다.
정이 폭 들다/사랑에 폭 빠지다/빗물에 폭 젖다/말에 폭 빠지다/말을 폭 곧이듣다/일에 폭 빠져 살다/폭 늙다/술에 폭 취하다/발을 폭 담그다.
정을 폭 쏟다/마음을 폭 쏟다.
아기가 강보에 폭 싸이다/고양이를 담요에 폭 싸다/마을이 안개에 폭 감싸이다/산이 눈에 폭 덮이다/날이 폭 저물다.
고개를 폭 숙이다/머리를 폭 수그리다/허리를 폭 꺾다/몸이 폭 고꾸라지다.
땅이 폭 꺼지다/볼이 폭 패다.
모자를 폭 눌러쓰다/이불을 폭 뒤집어쓰다.
한숨을 폭 내쉬다/한숨이 폭 나오다.
기운이 폭 빠지다/독기가 폭 빠지다/풀이 폭 죽다.
젓가락으로 감자를 폭 찌르다/손가락으로 옆구리를 폭 찌르다.
고기를 폭 고아 먹다.
김치가 폭 익다.
작은애를 등교시키다가 멈칫했다. 아는 얼굴인데? 하마터면 인사할 뻔했다. 눈이 마주쳤지만 바로 시선을 거두는 걸 보니, 모르는 사이가 맞나 보다. 딸애가 교문으로 들어가고, 나는 몸을 돌려 원 방향의 횡단보도를 건넌다. 부지런히 걷는데 아까 그 엄마가 보인다. '아, 저 엄마.' 그제야 누군지 알겠다. 어느 날엔 안 간다고 우는 애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고, 또 어느 날엔 아이 손을 잡고 웃으며 걸었다. 애 엄마의 품에 네댓 살쯤 돼 보이는 딸이 매달려 있다. 아니, 엄마 품에 안겨 잠이 폭 들어 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두 손으로 엄마 어깨를 그러쥐고 있다. 하늘색 운동화가 공중에서 대롱거린다. 유치원 가방이 보인다. 앞으로도 7분 넘게 잠든 아이를 안고 걸어가야 한다. 아이 엄마의 뒷모습을 보니 한숨이 폭 나온다. 어휴. 남 일 같지가 않다. 잠든 아이의 측은함보다 애 엄마의 피로한 등이 제일 먼저 눈에 밟힌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뼛속까지 엄마다.
주로 작은애를 안고 다녔다. 아니, 둘째를 임신했을 땐 만삭의 몸으로, 두 돌 지난 큰애를 아기띠로 안고 파워 워킹을 하며 출근했다. 아기띠를 하기엔 높은 월령이었지만, 같이 걸으면 꽃, 풀, 돌멩이, 강아지 등 온 세계에 말을 걸고 들여다보는 통에 어른 걸음으로 10분이면 도착할 어린이집을 30분 넘게 걸려 도착했었다. 지각이 잦아지면서 결국 나는 큰애를 아기띠로 안고, 군 기저귀 팩과 어린이집 가방을 양손에 들고 출근했고, 차나 도보로 출근하는 원의 직장 동료나 상급자와 마주치면 일부러 더 씩씩한 척했다. 둘째 출산 후 복직을 했을 땐, 100일도 안 된 작은애를 유모차에 싣고, 세 살의 큰애를 보조 의자 라이더에 앉혀 유모차와 연결했다. 아파트 현관을 나옴과 동시에 어린이집으로 냅다 뛰었다. 장마에도, 폭설에도. 여유라곤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없었다. 날로 날로 나는 강퍅해 갔다.
너무 어릴 때부터 시설을 다닌 죄로 작은애는 하루 걸러 하루, 곳곳의 소아과를 전전했다. 장염과 수족구, 열감기는 언제나 함께하는 우리들의 세 친구였고 냉장고 맨 위 칸에는 늘 하얀색 항생제가 포진해 있었다.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시기는 했지만,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일에 고군분투하며 꾸역꾸역 회사를 다녔다. 그렇게 큰 애들이 벌써 6학년, 4학년이다. 큰애는 내 키를 10cm나 뛰어넘었다. 언제나처럼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안심이 된다.
작은애는 특히나 내 품을 좋아했다. 지금도 그렇다. 품에서 금방 잠이 들었다. 안고 있으면 몸이 축 쳐져 두 다리가 대롱대롱했다. 여리디여린 것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 아이의 머릿내와 살내가 좋아 고개를 숙여 흠, 냄새를 맡았다. 폭신한 팔다리와 날로 빵빵해지는 볼살이 잘 빚은 밀가루반죽 같았다. 이 아이가 내 아이라니. 몸은 힘들어도, 아이를 안으며 위로받았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시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 내면서 새로운 세계가 또 열렸다. 아이는 매일매일 행복을 선물했다.
부사 '폭'이 주는 말이 너무 정감 있어 사전을 찾아 보았다. 내게 '폭'은 '품에 폭 안겨', '가슴에 폭 안고'가 가장 익숙한데 세상에나, 사전 용례에 없다. 이럴 수가. 내부망에 접속해 말뭉치를 뒤진다. 왜 없어, 있지. 이렇게 많이 쓰는데. 그렇게 살핀 쓰임을 거칠게 묶어 보니, 저렇게나 많다. '폭'은 '깊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폭과 함께 쓰이는 동사나 형용사를 보면 대부분 그렇다. '폭'과 함께 깊숙이 들어가고, 파묻고, 기대고, 수그리고, 빠지고, 그래서 안 보이게 되고, 안 보이게 하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들어간 흔적을 보이며, 들어감으로써 그것과 하나가 되고, 형체가 연해지거나, 다른 성질로 바뀐다. '폭' 뒤에 오는 말은 하나같이 시적이다. 소설가 염상섭은 <무현금>에서 '전등불이 들어온 지도 벌써 오래고 날이 폭 저물어 버렸다.'라고 썼다.
나의 하루를 찬찬히 되짚어 본다. 가슴에 폭 안아 두 아이를 깨우고, 남편을 폭 안고 배웅을 하며, 폭 끓인 미역국으로 아침을 차린다. 사무실에 들어가 고개를 폭 숙여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정성을 폭 쏟으며 일을 한다. 화장실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면 볼이 폭 패도록 웃고, 불편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한숨을 폭 쉰다. 회의를 하다, 논쟁이 붙으면 풀이 푹 죽어, 퇴근해서 소파에 폭 파묻히고, 잠들 때쯤 이불을 폭 뒤집어쓴다. 그러다 "엄마 왜 그래?" 작은애가 걱정 안테나를 세우면 그제야 "아니야~" 하며, 딸애를 다시 품에 폭 안는다.
'폭'이란 말이 참 좋다. 어쩐지 '푹'으론 설명이 안 되는, 그 무엇이 있다.
때로는 큰말보다 작은말의 힘이 훨씬 세다.
사랑하는 두 아이와 남편이 갑자기 폭 안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