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사전학회 학술 대회가 연대에서 있다. 9시 반까지 도착해서 등록을 하려면 8시엔 나가야 하는데 일어나자미자 밀린 빨래를 돌리고 건조대에서 마른빨래를 걷어 개고 나니 7시 50분이다. 서둘러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드라이를 마치고 나오니 8시 반. 택시를 잡아타고 신촌으로 떠난다.
날이 맑다.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며 성산 대교를 건넌다. 가끔 고개를 들어 한강에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본다. 출장이라고 하기엔 시내 여행 같다. 충만한 기분, 설레는 떨림. 지도 교수님, 학회장님, 대학원 선배와 동문들, 논문으로만 뵈었던 교수님들, 퇴직한 전 실장님, 타 기관 실장님들 뵐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연대 북문으로 들어선 택시는 언더우드관 아래 회차지에 나를 내려 준다. 역시나 여행하는 기분으로 위당관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자료집과 떡, 생수, 캔 커피를 받아 100주년 기념홀에 입실. 들어서자마자 고대 도원영 교수님과 눈이 마주친다. 두 손을 잡고 따뜻한 눈인사를 나눈다. 아. 행복하다. 대면 학술 대회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2년 만이다. 아니 정확히는 이대에서 있던 학술 대회 이후 3년 만이다.
우측 끝으로 노트북 화면에 파일이 가득한 지도 교수님이 보인다. 더 말씀을 나누려는데 교수님께 때마침 전화가 온다. 그세 더 마르신 것 같다. 미처 꺼내지 못한 박사 논문에 대한 얘기가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얹혀 따끔따끔하다.
학회가 시작되고 축사들이 이어진다. 20년 전 창립 총회에 대한 회고와 소회가 슬라이드에 송출되기도 한다. 역대 사전학회 이사분들을 만난다. 세월 앞에 장사 없구나. 대부분 연로해지셨다.
2005년 봄 학술 대회를 원에서 한 적이 있다. 북한어 관련해서 방영심 선생님이 발표를 했었다. 사전 경력이 갓 1년이 된, 당시의 나는 사전학회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민간 출판사와 기업, 대학과 정책 기관이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지지하는 모습이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아름다웠다. 다른 학회와는 다른 특유의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석사 4학기, 스물대여섯쯤이었을까. 사전을 사랑하고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선하구나, 했다. 온전히 두 발을 담근 자가 아닌, 관찰자의 스탠스였다.
그날로부터 17년이 지났고 나는 마흔이 넘었다. 다시 20년 후를 그려 본다. 20년 후에도 나는 사전쟁이일까. 글쎄 그럴 것 같진 않다. 그래선 안 될 것만 같다.
한용운 선생님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물으신다. "사전 재밌지 않아요? 할수록 재밌는 거 같아." 진심이구나, 이 분. 정말 사전을 사랑하시는구나. 진심인 사람은, 진정성이 있는 사람은 숨길 수가 없다. 넌 어떠니? 그 마음이 나를 향하려다 퉁, 튕겨 나간다. 내 진심이 다해 감을 희미하게 느낀다. 미세한 통증이 찌르르. 마음이 시큰하다.
유학 시절, 하숙집 부엌에 웹스터 영어사전이 있고 가정주부가 그걸 들춰 보며 초청장을 쓰고 틀린 걸 정정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남기심 교수님은 사전을 찾으며 글을 쓰는 건 인격의 표현이라고 하셨다. 그것을 일반화해야 한다고 하셨다. 생활화하고 삶에 가치가 되는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듣는 내내 그건 비단 사전만의 역할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생활화하고 삶에 가치가 되는 그 무엇을 찾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이라...
20년 후, 나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심각한 길치가 아득한 사거리에 서 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