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카운트다운

by 어슴푸레

내 손으로 앱이나 휴대폰 기능을 이용해 디데이 알림을 사용해 본 건 딱 한 번. 작년에 복직 50일을 앞두고 긴장 좀 하자는 차원에서 카톡 프로필에 'D-Day 50'을 띄워 본 게 전부다. 부엌 벽면을 차지하는 대형 달력과 휴대폰 속 캘린더에 진작부터 빨간색으로 표시했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중 3 연합고사일, 고 3 수능 시험일 전 100일이면 모두 짠 것처럼, 칠판 옆 벽면에 어김없이 일력(日曆)이 걸렸다. 달력 속 세 자리 숫자가 두 자리가 되고 마침내 한 자리가 되었을 때, 교실 안 공기는 잔뜩 무거웠다.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학교와 담임의 마음은 충분히 알았으나, 똑같은 달력이 3학년 모든 반, 거의 비슷한 위치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 고구마를 잘못 삼킨 듯 답답했다. 시험이 끝나고 치워졌을, 머리만 남은 달력의 행방 따윈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연합고사를 치르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고, 수능을 치르고 4년제 대학에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갔고, 과정 중에 취직을 했다. 중간에 이직을 했고, 좀 늦게 졸업을 했다. 그리고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이토록 짧게 요약되는 삶이라니. 물론 그 사이사이에 디데이가 적지 않았다. 결혼식, 출산 예정일, 복직일, 채용 시험일, 합격자 발표일, 박사 입학 시험일, 종합 시험일 등 개인의 역사를 이루는 디데이부터, 회의 자료 마감일과 교열 원고 데드라인, 대학원 프로젝트 납기일 등 사회적 활동의 디데이까지 뭔가 자잘하게 디테일했다. 약속된 날짜는 숫자만으로 기가 눌렸다. '내가 다 아는데. 남들 보게, 뭐 하러?' 굳이 디데이 알림을 받으면서까지 사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남의 이목이 싫으면서도 거기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했다.


요즘의 나는 남몰래 디데이를 정해 놓고 매일매일 카운트다운을 한다. 그러는 동안 흔들리지 않는 날이 없다. 남편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 곧 중학교 갈 큰애와 갖고 싶은 게 많은 작은애에게 월급이 주는 금전적 여유를 지금처럼 제공하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서.


상기자(上記者)는 일신상의 사유로 퇴직하려고 합니다.

봄이 오기 전엔 꼭 써서 내고 싶은 사표 속 문장.

가만, 그래서 오늘이 디 마이너스 며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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