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과 꾹 사이

by 어슴푸레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여러 감정들이 올라온다. 말과 눈빛이 고울 리 없다. 목소린 커지고 어떨 땐 고막을 찢을 듯한 "야!" 소리에, 질러 놓고 내가 더 놀란다. 직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만큼 사회화가 잘되었다고 하기엔 내 아이들에게 미안한 날이 부지기수다. 고상하고 교양 있는 엄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육아의 최전선엔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상호 작용이 대부분이다. 일관된 양육 방식과 태도란 죽을 때까지 잡을 수 없는 뜬구름이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 얼마간 나도 크지 않았나 오만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큰애가 초등학교에 갈 무렵이었다. 크긴 뭘 커. 매일매일 적나라한 민낯에 애들은 내 눈치를 많이 봤다. "엄마, 화났어요?", "엄마 무슨 일 있었어요?"라고 아이들이 내게 물었다. 큰애는 늘 간청하듯 말했다. "친절하게 대해 줘요."


쌀쌀맞고 명령조로 말하는 엄마가 두 애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때의 나는 아이들에게조차 차가운 사람이었다.

서 사장이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매달아 죽은 후로, 남편의 개발자 인생은 심각하게 꼬였다. 극심한 트라우마와 불치가 된 크론병 등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 한 7년을 가족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쉬어도 되지. 건강이 먼저야. 그렇게 남편의 퇴사를 지지했고 1년을 나의 외벌이로 살았다. 걱정 끼치기 싫어 경제적, 심리적으로 힘들어도 친정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사랑해서 선택한 내 사람, 온 힘을 다해 꾸리는 내 가정을 두고, "거 봐라. 내가 뭐랬니? 그리로 시집가면 고생한다 했니, 안 했니? 내 정 서방을 그냥." 하실 게 뻔했다. 언제나처럼 행복한 가정의 모습만을 보였다. 친정은 매번 내게 시험을 치르러 가는 곳 같았다. 똑바로 잘 살고 있는지 점검받는 기분이었다.


작은애가 병설 유치원에서 뛰쳐나와 집에 가겠다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악을 쓰고 울부짖던 아침. 나는 무너졌다. 아이를 끌고 복도를 완강히 걸을 때, 급히 연가를 쓰고 아이와 어디라도 갔어야 했다. 아이 곁을 지켰어야 했다. 아이의 불안이 커진 건 그 무렵이었다. 불안해하는 엄마의 눈빛을 그대로 흡수한 딸은 매일매일 불안해하며 저녁 6시가 지날 때까지 어두운 유치원 도서실에서 나를 외롭게 기다렸다.


그때의 남편과 두 아이를 생각하면 심장이 오그라든다. 송곳 하나 들어갈 자리 없이 숨 막혔던 내가 참을 수 없이 싫다. 꾸역꾸역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들여보내고 100m 달리기하듯 뛰던 아침 출근길은 단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었다.


오죽하면 여덟 살짜리가 친절하게 대해 달라고 했을까. 울음을 그쳐야 안아 준다며 수십 번씩 밀쳐 내는 엄마가 큰애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매만 들지 않았을 뿐 난 아이에게 혹독했다.


욱과 꾹 사이.

이렇듯 비가 눈물처럼 쏟아지는 날에는

왈칵 화가 나고, 눈을 꽉 감고 화를 참았던

쇠털같이 많은 날들이 가슴에 얹혀 내려가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오늘은 욱보다 꾹이 많았네

스스로 위로 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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