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코로나19가 아직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던 2019년 12월, 우리 네 식구는 간만에 극장 나들이를 갔다. <겨울 왕국 2>가 개봉되고 몇 주쯤 지나서였다. 뒷좌석 중앙의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남편, 큰애, 작은애, 내 순서로 쪼르르 들어가 자리에 막 앉으려는데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아, 씨바. 존나 짜증 나. 초딩들이랑 같이 앉았네. 오늘 재수 뒤지게 없다."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순간 뇌 정지가 왔다.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안쪽에 앉은 남편과 아이들은 다행히 그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따귀를 맞은 듯했다. "학생, 지금 뭐라고 했어요?" 따질까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진정이 되지 않았다. 평정심을 유지하기엔 저쪽이 너무 상식 이하였고, 싸우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속으로는 "학생, 집에서 그렇게 배웠어요?", "우리가 뭘 잘못했나요?", "잠깐 옆으로 비켜 줬다고 그렇게 심하게 말해도 되나요?" 가운데 어떤 말이 가장 촌철살인일까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영화 시작 3분을 앞두고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말로 저 학생을 무찌를까 더 고민할 새도 없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일면식도 없는, 스무 살도 훨씬 아래인 중학생 여자아이에게서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이 내 버전으로 상영되는 것 같았다. 직장인 무리가, 커피를 쏟은 여자 주인공에게 마치 들으라는 듯 "저거 어떻게 치우냐 윽. 정말 맘충."이라고 했을 때 느껴지던 낯 뜨거움보다 훨씬 더했다. 영화와 개인적 경험의 충격 차는 하늘과 땅이었다.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긴장했다. 좌석을 확인하고 일제히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옆에 누가 앉았는지, 그들의 나이가 얼마쯤인지 의식했다. '휴' 하기도 하고, 이번에도 그런 말을 들으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했다. 두고두고 그날을 생각했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땐 결코 가만있지 않으리라 다짐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날은 더 이상 없었다. 몇 년이 지나서야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이들은 물론 남편은 깜짝 놀랐다. 왜 가만있었냐고 그랬다. 그럼 싸우냐고 그랬다. 바보같이 아무 말도 못 해 놓고 이제 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게 조금 우습기도 했다. 모두가 언짢아했다. "뭐 그런 애가 다 있어." 그 정도에서 멈췄다. 적어도 우리 가족은 그 학생과 같은 급이 아니었다.
지금 그 상황이 된다면 난 이 말로 받아치고 싶다.
학생, 말이라고 다 말인 줄 알아?
당장 사과해. 지금, 나와 내 애들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