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피를 몇 번 보았나요

by 어슴푸레

선연한 피는 쇼크를 일으킨다. 코피가 자칫 목 안으로 넘어가기라도 하면 강한 쇠 맛과 쇠 냄새에 으윽, 진저리가 쳐진다. 피는 물보다 끈적하고 비릿하다. 피가 낭자하면 오래 보기 어렵다. 패닉과 헛구역질을 일으킨다.


두 아이가 크는 동안, 나는 어려서 좀처럼 흘려 본 적 없는 피를 여러 번 봐야 했다.


#1

큰애가 여섯 살이던 7월의 어느 밤이었다. 아이가 죽을 듯이 악을 쓰며 울었다.


"엄마, 입에서 피 나. 엉엉엉. 엄마아아아아. 엄마아아아아. 문에 부딪혔어. 아아악."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아이의 고개를 젖혀 살펴보니 입천장에 3cm는 족히 되는 금이 길게 파여 있었다. 금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방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심장은 요동치고,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119 번호조차 누르기 힘들었다. 공포에 완전히 잠식당했다. 겨우겨우 구급차를 불러, 아이 입에 거즈를 물려 3차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소독을 하고, 처치를 하고, 약을 받아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입천장엔 통점이 없다고 했다. 크게 아프지 않을 거라 했다. 수술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저녁을 먹이고 참외를 깎아 어른 포크를 내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작은애가 은박의 핫핑크 루피 한복을 입겠다고 안방 장롱 문을 열고, 나와 실랑이하는 사이, 큰애가 참외를 찍은 포크를 들고 제 방에 들어갔다. 불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문에 세게 부딪혔고 그 충격으로 참외는 공중을 날았다. 그와 동시에 뾰족한 포크 날이 큰애의 입천장에 찍혀 옆으로 밀렸다. 아, 하느님! 눈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2

작은애가 여섯 살이던 4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8시 유연 근무 준비로 화장대에서 거울을 보고 있을 때였다.

쿵. 으악. 엄마아아아아.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회사 가지 말라고 칭얼대던 딸애가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뛰어가서 얼굴부터 살폈다. 앗, 피! 턱이 찢어져 있었다. 꿰매야 했다. 턱과 혀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2년 전, 큰애의 '입천장 과다 출혈'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침대 프레임 측면 모서리에 피가 보였다. 숨이 가빠졌다. 언제 봐도 피는 적응이 안 됐다. 9시에 문 열면 정형외과에서 꿰매면 된다는 무사태평 남편과 어머니의 태도에 화가 치솟았다. 나는 그 길로 작은애를 안고 택시를 잡아 탔다. 급히 연가를 냈다. 언제나처럼 목적지는 3차 병원 응급실이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부분 마취를 하고, 약을 먹여 재우고, 여섯 바늘을 떠서 봉합 수술을 마쳤다. 마취에서 어설프게 깬 작은애는 정신 나간 것처럼 경기하고, 몸부림치고, 일어서다 넘어지고, 힘 조절을 못 해 여기저기 헛발질과 주먹질을 했다. 머리라도 다칠세라 아이의 머리를 감싸고 내 쪽으로 넘어지기를 수차례. 몇 시간이 지나서야 진정이 됐다.


#3

올해 5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전라도로 가족 여행을 온 지 이틀째였다. 보성의 대한 다원을 둘러보고 큰애와 다원의 연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엄마, 이것 봐라아~~~~~~~~~"

후다다다다다닥. 쿵. 으악. 엄마아아아아아.


흡.

아 또 왜애~?! ㅜ.ㅜ

경사지고 울퉁불퉁한 노면을 신나서 달리던 작은애가 붕 떴다. 철퍼덕. 두 팔을 벌리고 날던 비행기는 얼마 가지 못하고 꼬꾸라졌다. 남편과 나는 아이에게로 전력 질주 했다. 아이 바지의 무릎 부위가 찢어져 너덜거렸다. 바짓단을 말아 올리자 다시 한 번 섬뜩한 선혈이 눈을 콱 찔렀다. 서둘러 가방에서 마데카솔과 면봉, 밴드를 꺼냈다. 찢어진 무릎에서 붉은 피가 쉴 새 없이 차올라 다리로 흘렀다. 물티슈로 무릎을 눌러 피를 닦아 냈다. 무릎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남편이 아이를 안아 들쳐 업었다.


보성의 외과를 검색했다. 남편 차로 30분쯤 달렸다. 오전 10시가 안 되는 시간임에도 병원엔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북적였다. 간호사가 절뚝거리는 딸을 보자마자 "애기야, 이리 와." 베드에 앉히고 신속하게 드레싱을 했다. 몇 분 후 의사 선생님이 와서 부분 마취를 하고 여덟 바늘을 꿰맸다.


두 아이의 피를 볼 때마다 나는 그야말로 피가 마른다. 이것 말고도 큰애가 나무총을 만든다고 나무젓가락을 커터로 다듬다 손가락이 베여 아들애에게 쇼크가 온 적도 있으나 그것까지는 차마 못 쓰겠다. 엄마로서 더 이상의 사건, 사고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굳이 이런 일들로 피가 물보다 진함을 느끼거나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피는 못 속여.

어련히 내 아들딸 아니랄까 봐.

조심성 없고 잘 다치는 엄마의 습성을 이렇게까지 닮을 필요는 없건만.


워워.

얘들아, 엄마의 정신 건강을 위해 이제 그만 다쳐 주면 안 되겠니?

제발. 제에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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