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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금 여기

누가 이런 짓을

by 어슴푸레

아이를 등교시키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졌다. 세상에나. 나무가 살 수 있을까. 은색 래커가 가느다란 그루를 중심으로 뿌리, 흙을 지나 바위 밑으로 흘러 작은 폭포수의 모양을 하고 굳어 있다. 대체 왜.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분사의 흔적이다. 이파리까지 튄 래커는 나무의 숨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작정하고 한 놈만 팬 듯 키 작은 나무의 왼편만 처참히 짓밟혀 있다. 이쯤 되면 테러다.


햇빛은 잎에 전달될까. 기공은 다 닫혔겠지. 수분은 제대로 증발될까. 광합성은커녕 호흡은 할 수 있을까. 뿌리도 줄기도 잎도 성한 데가 없는데 말라 죽는 게 당연한 수순일까.


나는 곧 나무의 마음이 된다. 그야말로 봉변을 당한 나무가 되고 보니, 해도 해도 너무하지 싶다.


제 자리를 지키고 딱 내 키만큼만 햇빛을 향해 잎을 뻗었는데 이 무슨 일인가.


사거리 골목 초입이라 접촉 사고라도 났던 걸까. 그래서 시험 삼아 잘 나오는지 래커를 땅에다 뿌려 본 걸까. 아니면 도색 작업이 생각만큼 안 돼서 애먼 나무에 화풀이하며 태연하게 퇴근한 걸까. CCTV엔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


나무에겐 그야말로 사고가 되어 버린 은색 래커 분사. 지나는 내내 벌써 여러 차례, 나무의 건강을 살피러 가 보고, 들여다본다. 안타깝게도 벌써 한쪽이 누렇게 마르기 시작했다. 나무의 저력을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지 싶다.


작고 여리고 순한 것들이 해를 당할 때마다 나는 내 몸인 듯 아프다. 그리고 화가 난다.


이런 식의 사건은 정말이지 겪고 싶지도, 겪게 하고 싶지도 않다.


부디 나무의 호흡이 너무 힘들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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