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 엄마아!"
"왜애?"
"저기, 저기! 나비!"
"나비가 왜? 그러다 쏟겠다. 화상 입으면 어쩌려고. 제발 가만히 앉아 있음 안 될까."
네 식구, 모처럼 만에 수영을 마치고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열중해 먹고 있었다. 갑자기 작은애가 겁에 잔뜩 질려서는 보라색 플라스틱 의자 위로 올라가 몸을 옆으로 돌리고 웅크려 앉았다. 서둘러 아이의 시선을 좇았다. 테이블 오른쪽에 가로로 놓인 아이스크림 냉장고 주위로 형광색에 가까운 초록 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날아들었다. 나방도 아니고 나빈데 왜 이리 호들갑인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후루룩거리며 라면 면발을 빨아 당겼다.
나비가 목말랐나 봐.
아이스크림 냉장고 상판의 유리문 위에 초록 나비가 내려앉았다. 유리 위에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나비의 얼굴에서 곧게 뻗은 까맣고 긴 대롱이 물에 수직으로 닿았다. 빨대라기보다 침 같았다. 컵라면을 먹던 조용한 일상이 돌연 극사실주의 자연 다큐멘터리로 바뀌었다. 와. 살면서 나비가 물 먹는 걸 다 보다니. 대롱으로 물 마시는 나비는 내 평생 처음이었다. 그것도 사람이 이용하는 편의점 아이스크림 냉장고 유리문에서 보기는. 와, 이 소름 돋는 확률. 이제는 딸애도 더 무섭지 않은지, 초록 나비가 물 마시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6cm는 족히 돼 보이는 나비는 다리를 약간 벌리고, 몸을 살짝 옆으로 틀어 고상하고 날렵한 모습으로 물을 먹었다. 이 더위에 나비는 저 물이 얼마나 달고 시원할까. 나비에게 이 편의점 아이스크림 냉장고는 이미 오래전부터 물만 먹고 가는 토끼의 옹달샘 같은 곳일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나비가 붕 날았다. 그러곤 냉장고 유리문의 오른쪽 측면에 고인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안쪽이 더 시원한 걸 이미 경험으로 아는 걸까. 나비야, 너 참 대단하구나!
손님들이 아이스크림을 꺼내는 동안 냉장고의 찬 기운과 바깥의 더운 공기가 만나면서 유리 표면에 김이 서렸나 보다. 그 김이 물로 변하면서 물웅덩이가 생겼나 보다. 곤충과 공생하는 편의점이라니. 불현듯 편의점에서 "라라라 라라라 라라 ~ 날 좋아한다고 라라라 라라라 라라 ~ 날 사랑한다고...." 포카리 스웨트 광고 송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열심히 이미지로 구글링을 했다. 딸애와 내가 목격한 나비는 '큰녹색부전나비'로 보였다. 앗. 사진이라도 찍어 놓을걸. 그 생각조차 못 할 만큼 나는 나비의 모습에 완전히 빨려 들었다.
물 마시는 초록 나비를 보면서
목마를 때 언제든 찾아와 목을 축이고, 잠시라도 쉬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그리고
목마를 때
돌돌 말린 대롱을 곧게 펴고 쭉쭉쭉쭉 필요한 수분을 채울 줄 아는 영민한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나비의 까만 대롱과 구부린 다리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