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목소리가 너무 커요

아빠도 먹고살려고 그러는 거야

by 라떼

인정한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좀 나서는 편이다. 좋게 말하자면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나쁘게 말하자면 좀 나댄다.


산책이나 조깅 때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사는 물론이고 전철역이나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인사를 하고 말을 거는 편이다. 나는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인사하고 얘기하는 걸 즐긴다. 하지만 욱이는 그렇지 않다. 내가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 때마다 눈치를 주고 그러지 말라고 한다. 특히 난 히스패닉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몇 마디 할 줄 아는 스페인어로 그들에게 아는 척을 하면 대부분은 친근하게 대해준다. 욱이는 내게, 아빠는 히스패닉 사람들에게 자꾸 아미고라고 하면서 친한 척하다가 한 번 호되게 당해봐야 정신 차릴 거라고도 했다.

KakaoTalk_20210818_102654082.jpg 뉴포트 비치에서 만난 낚시 하러 온 부자 - 내가 대뜸 말을 걸어 기타와 낚시를 둘 다 잘하냐고 했더니 그는 어느 하나도 잘하는 게 없다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20210808_140641.jpg 뉴포트 비치에서 제법 큰 물고기를 낚은 낚시꾼


욱이는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을 경계와 조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나는 살던 동네가 아니고 새로운 동네에서 적당한 경계심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산타애나는 히스패닉계가 대다수이고 이웃 부자동네 어바인(Irvine)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좀 가난한 동네이다. 온 지 며칠이 지났을 때, 욱이가 인터넷에서 뭔가를 검색해보더니, 산타애나가 치안이 안 좋은 동네로 알려져 있다고 하며 왜 어바인 같은 좋은 동네에 집을 얻지 않았냐고 따졌다. 여러모로 어바인이 훨씬 부자동네이고 치안도 가장 좋은 곳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물가가 비싼 캘리포니아에서도 어바인은 특히 비싼 동네이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것이지만, 이곳 산타애나에서 만나는 많은 히스패닉계 사람들이 조금 가난할 지라도, 훨씬 친근하고 다정하다. 지나친 경계의 시선으로만 보면 친절한 이웃이 잘 안 보일 것이다.

20210806_192104.jpg 주말에 시내 쇼핑센터에서 여는 밴드 공연에 맞춰 스윙댄스를 추는 커플


20210806_190215.jpg 밴드 야외공연 한쪽에서 즐겁게 춤추는 시민들


물론 때로 지나치게 나대는 아빠를 제어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욱이가 하기도 한다. 욱이는 성향이 비슷한 엄마를 닮았는지 나서는 것,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서려는 나를 말려준다. 나서고 싶은 욕구가 강한 나로서는 아쉬울 때가 많지만 이제 나이도 적지 않으니 가족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다.


한국에서도 아재나 아짐들이 밖에 나가면 목소리가 커서 젊은 친구들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또한 나도 한국의 대표하는 아재로서 목소리가 큰 편이다. 혹시 내가 가는 귀가 먹어서 그런가 생각도 해보았지만 매년 청력 검사 결과는 정상이다. 그냥 성격상 좀 욕심도 많고 나서길 좋아해서 목소리가 큰 것 같다. 한국에서도 밖에 나가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욱이에게 지적을 가끔 받곤 했는데 미국에서는 더군다나 잘 안 되는 영어를 하려다 보니 긴장과 흥분으로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더 커진다. 욱이는 나와 외출해서 식당이나 마트에 갈 때마다 '아빠 목소리 너무 커요. 좀 줄이세요'라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목소리가 많이 크다.


이국땅에서 잘 안 되는 말로 적응하려다 보니, 한마디로 먹고 살려다 보니 그런 거라고, 욱이에게 이해를 구한다. 아빠도 여기서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거라고. 하지만 어쨌든 목소리를 줄이긴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 땅이 좀 더 익숙해져야 하고, 영어도 좀 편안하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영어를 차분하고 나직하게 할 수 있으려면 열심히 배워서 실력을 향상하는 수밖에 없다. 조금 목소리를 낮춰보자. 너무 급하게 잘하려다 보면 목소리가 커진다. 난 원어민이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좀 편안하게 먹는 것이 필요하다.


Don't be too nervous when you speak English!


20210808_141017.jpg 나는 갈매기처럼 영어의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날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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