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를 원서로 읽을 수 있을까?

미국에 왔으니 미국 문학을

by 라떼

나는 욱이에게 늘 말한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그러면 욱이는 말한다. 아빠 세대는 책과 신문에서 지식을 얻지만 자기 세대는 책이 아니라 유튜브에서, 신문이 아니라 인터넷 포털에서 지식을 얻는 거라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첨단 영상매체가 넘치는 요즘에도 책은 여전히 중요하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에 낚이며 휴대폰에서 인터넷 기사들을 찾아보는 것과 차분히 앉아 종이로 된 신문을 보는 것은 질 적으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는 다고 생각한다. 유튜브에는 많은 지식들이 흥미롭게 소개되어 있지만, 이 또한 구독자수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자극적이고 흥미위주인 내용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책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말을 욱이에게 늘 하며 꼰대로 취급받는다.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하지만 많이 읽지는 못한다 - 이게 말이 되나? ^^) 그래서 미국에 오면서 읽을 한국 소설책들을 가져올까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무모한 결심을 한 가지 했다. 한국 책은 한 권도 안 가지고 갈 것이며,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미국 문학 원서 읽기에 도전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실로 야심 찬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말로 된 책도 많이 못 읽으면서 영어로 된 원서로 미국 문학을 감상하다니.


이곳 미국에서 새 책은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그래서 먼저 인근의 헌 책방을 뒤져서 엄청난 책을 한 권 발굴해냈다. 이름하여 미국의 단편 소설. 반 뼘 정도 되는 두께에 유명 미국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총망라한 책을 단돈 3불에 샀다. 이 책을 사 가지고 돌아오며 이번에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이 한 권만을 다 읽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두꺼운 책을 한 권 사두고 마음이 흐뭇했다. 하지만 이 책은 아직 첫 페이지도 펼쳐보지 못하고 고이 모셔두고 있다. 미국에 있는 기간이 길지 않으니 내가 읽고 싶은 작가에 집중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모순이다. 이 책의 수십 편의 작품 중 내가 읽고 싶은 작가의 작품만 먼저 읽으면 될 것을...)

20210808_183004.jpg 미국 와서 처음 산 단편 소설집 (유명 작가의 작품이 총망라되어있다)


나는 지역 도서관을 찾아서 작가들의 책을 검색해보았다. 미국 작가 중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작가는 헤밍웨이였다. 예전에 노인과 바다, 그리고 몇 편의 단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그의 유명한 작품인, <무기여 잘 있거라>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도 아직 못 읽어보았다) 무미건조하면서도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의 리얼리즘 문학을 영어 원작으로 읽어본다면 멋질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떠올린 작가는 마크 트웨인이었다. 어릴 때 어린이 문고판으로 읽은 허클베리핀의 모험, 톰 소여의 모험 등으로 유명한 이 작가도 또한 유머 있으면서도 시대를 비껴가지 않고 직시하는 작품세계를 가졌다.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에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왕자와 거지>의 작가라는 점도 다가왔다.

"그래, 이 두 사람의 작품을 한번 원서로 도전해보는 거야!"

우선 도서관에서 헤밍웨이의 작품을 검색하여 단편 소설집과 헤밍웨이 해설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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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린 헤밍웨이 책들

의욕에 불탄 나는 도서관 건물에 있는 기증 책 서점인 Friend's Book Store을 뒤져서 헤밍웨이와 마크 트웨인의 작품을 찾아 권당 50센트~2불의 저렴한 가격에 몇 권을 샀다. 읽을 책을 대거 확보해놓으니 일단 마음이 흐뭇했다. 하지만 그 흐뭇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으니......


책을 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당연히 읽는 게 문제였다. 읽다가 무슨 뜻인지 몰라 다시 한번 읽어보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고,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나왔다. 읽긴 읽되, 마치 성문 종합 영어(이게 뭔지 아는 독자들은 음... 나와 같은 세대이다)의 독해 지문 해석하는 것처럼 시간이 걸렸다. 쥴리에게 읽는 게 너무 느리다고 하소연했더니 사전을 찾게 되면 흐름이 끊기니 모르는 단어가 나오더라도 일단 쭉 읽으라고 했다. 책은 쌓여있는데 진도는 안 나가게 되니, 마음을 좀 비워야 했다.

'음 헤밍웨이와 마크 트웨인 두 작가에 도전하는 것은 솔직히 힘들다. 둘 중 헤밍웨이에게만 집중하자. 헤밍웨이만 읽어도 성공이지 뭐.'

마크 트웨인 책은 일단 장식용으로 간직하고 헤밍웨이를 읽기 시작했다. 학생용 헤밍웨이 해설서부터 읽었다. 학생용이라 쉬운 말로 쓰여 있었고 헤밍웨이 문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서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몇 주에 걸쳐서 한 권을 다 읽었다! 미국 와서 처음 다 읽은 책이었다.

'그래 이렇게 한 권 한 권 헤밍웨이를 읽어나가면 되는 거야'


이런 가운데, 헤밍웨이가 출연한(?) 영화도 보게 되었다. 20011년 개봉된 우디 엘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였다. 넷플릭스에서 영화 검색을 할 때마다 눈에 띄긴 했지만, 제목만 보고 그냥 그렇고 그런 로맨스 영화인가 보다 생각하며 넘겼다가 몇 주 전에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여기에 헤밍웨이와 마트 트웨인이 나왔다. 헤밍웨이는 그의 문학 성향처럼 지극히 건조하고 사실주의적인 사람으로 그려졌는데, 나는, 자칭 헤밍웨이 문학을 읽는 사람으로서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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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헤밍웨이 (배우 코리 스톨, 좌)와 헤밍웨이 (우)


아, 그러나 내 앞에 갑자기 존 스타인벡이 나타났다. 그의 고향이 북부 캘리포니아의 농업도시 살리나스이고, 그가 대학시절에 일했던 목장, 공사장, 제당공장 등이 그의 작품 배경이 되었으며 소설 <통조림 공장 골목 Cannery Row>은 얼마 전에 샌프란시스토에 갔다가 지나쳐 온 몬테레이의 통조림 공장을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로 유명한 작가라는 것만 알고 있었고 그의 책은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또 헌책방을 뒤졌다. 집에 쌓여있는 헤밍웨이와 마크 트웨인의 책들이 떠올랐지만, 그냥 마음이 끌리는 대로 또 샀다. 헤밍웨이의 책도 보여 함께 샀다. 내 목표가 미국 문학의 수집이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애써 무시했다. 역시 마음은 흐뭇했다.

20211002_150830.jpg 또다시 기증도서 책방에서 산 스타인벡과 헤밍웨이 책들(총 2.5불이 들었다)

고백하자면, 책들은 여전히 책상 위에 먼지를 뒤집어쓰며 쌓여있고 나는 가끔 죄책감 같은 것이 들면 펼쳐서 조금씩 보고 있다. 마크 트웨인과 존 스타인벡 책은 아직 열어보지도 못했다. 며칠 전에 호스트 레이디인 쥴리가 내게 물었다. 내가 하도 떠벌려서 쥴리도 내가 책들을 사모으고 있으며 읽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책 읽는 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조금씩 읽는 데 영어라 너무 느려요."

"하하하, 한국 갈 때 짐으로 싸가야겠네."

"다시 Friend's Bookstore에 기증하고 가야 할까 봐요."

"하하하,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네."

두 달여 밖에 남지 않은 캘리포니아 생활을 고려해 볼 때, 이 대화는 아마도 사실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욱이도 쌓여만 가는 아빠의 영어 소설책들을 보며, 한국 들어갈 때 짐이 될까 봐 걱정하는 눈치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열망을 버리지 못했다. 그게 문제다.


그래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헤밍웨이를, 마트 트웨인을, 존 스타인벡을 원서로 읽을 수 있다. 다만 속도의 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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