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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 Jun 15. 2023

30년 후에 가 본 남도답사일번지 4

강진 무위사

"남도의 봄빛을 보지 못한자는 감히 색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 유홍준


월남사터에서 강진다원을 지나 무위사로 넘어갔다. 이 세곳은 가까운 곳에 모여 있다시피 해서  축복과도 같다. 유홍준 교수님이 남도답사 일번지의 첫 기착지로 항상 선택한다는 무위사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오후였지만 해가 아직 남아 있었다. 책에서는 무위사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바삐 움직이는 도회적 삶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무위사에 당도하는 순간, 세상에는 이처럼 소담하고, 한적하고, 검소하고, 질박한 아름다움도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더욱이 그 소박함은 가난의 미가 아니라 단아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무위사 입구인 일주문에서 바라보면 천왕문과 보제루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절의 경내로 들어오려면 이렇게 세번 정도 속세의 때에 찌든 마음을 정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무위사 일주문

 

무위사 천왕문
무위사 보제루

이 세개의 관문을 통과하여 경내로 가는 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극락보전이 나타난다. 무위사에 오는 것은 이 대웅전을 보러오는 것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책에서는 극락보전에 대한 설명과 칭송이 자자하다.

'세상의 국보 중에는 국보답지 못한 것이 적지 않지만 무위사 극락보전은 국보 제13호의 영예에 유감없이 보답하고 있다.

 예산 수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조사당 같은 고려시대 맞배지붕 주심포집의 엄숙함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종묘나 명륜당 대성전에서 보이는 단아함이 여기 그대로 살아있다.'


유홍준 교수님이 책에 극찬을 해놓으셔서 나도 요모조모 한참을 서서 찬찬히 뜯어보았다. 소박한 미가 있다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크기도, 치장도 소박하다. 그래서 유교수님은 '엄숙하면서 단아하다'했을 것이다. 유교수님은 극락보전의 이런 목소리를 듣는 것 같다 했다.

"너도 인생을 가꾸려면 (소담하고 단정한) 내 모습처럼 되어 보렴"

나도 극락보전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았다. 나에겐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너무 뽐내려 하지 않아도 돼. 볼 줄 아는 사람은 알아 보거든."

아마 책이 아니었으면 나도 그냥 무심히 눈길 몇 번 주고 지나쳤을 소박한 절집에 이런 내공과 아름다움이 깃들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뻤다. 이번 답사 내내 이런 기쁨이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극락보전은 지붕 용마루의 선을 슬쩍 공글렸는데 이 소박한 절집이 단 한가지 치장을 한 게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싶다.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제13호)

또 한가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옆면이다. 하, 누가 절에 와서 절집 옆을 보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책의 도움으로 나는 그런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옆면은 '기둥과 들보를 노출시키면서 조화로운 면분할로 집의 단정한 멋을 은근히 풍기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정말로 기둥과 들보들이 뚜렷이 노출되어 있고 한눈에 봐도 면분할이 예술적이면서도 단정했다.

무위사 극락보전의 옆모습

극락보전은 창살 무늬도 단순하고 소박한데 기둥과 지붕의 이음새나 공포의 배치는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힘이 있어 보였다.

무위사 극락보전 문창살
무위사 극락보전의 기둥과 들보의 이음새
무위사 경내의 모습(석탑 왼편으로 극락보전이 보인다)

첫 답사지였던 도갑사가 사람들로 붐볐던 것에 비하면 늦은 오후의 무위사는 한산해서 좋았다.  나는 새삼 깨달았다. 절을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이른 아침이나 저녁무렵이다. 속세를 피해서 왔는데 이 안에서 또다른 속세를 만나는 것은 과히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극락보전 안에는 성종 7년에 완성했다는 아미타 삼존벽화와 수월관음도가 있다고 했다. 책에는 답사객들이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나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문앞에서 들여다 보기만 했다. 아미타 삼존 후불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고 섬세한 고려불화의 전통을 유감없이 이어받은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극찬한 이 불화는 '조선시대의 불화답게 고려불화의 2단 구도를 포기하고 화면을 꽉 채우는 원형구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책에서는 부처님의 양 옆으로 협시보살이 서고 그 위쪽으로 6인의 나한상이 구름속에 있으면서 '행복한 친화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금빛으로 잘 칠해진 불상의 뒤에 보이는 후불벽화는 색채가 빛이 바래기도 했지만 요란하지 않고 품위가 있는 느낌이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다른 불화들은 보지 못하여서 아쉬웠다.  


절 한쪽에는 고려초에 이 절을 세번째로 중수한 선각국사(향미스님)의 탑비가 있다. 책에 소개된 대로 비석은 온전히 보전되어 있었는데 내 눈에는 돌거북의 머리 형상이 앞서 봤던 도갑사의 도선국사비나 월남사지의 진각국사비에 비해 예술성이 높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역시 보물507호이니, 책에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고 내가 우습게 본 모양이다.


책에서 무위사 소개글 말미에 한 페이지를 할애해서 언급한 개가 있다. 무위사의 이름과 걸맞게 누가 오건 꿈적도 않는 개가 빨간색만 보면 달려들어 문다고 했다. 늙은 개는 물론 이제 없다. 당시에도 10살이 넘었다고 하니 이젠 하늘나라에 간 지도 오래되었을 것이다. 유교수님은 3대 구라로 꼽힐 정도로 입담이 좋으신 분이다. 해박한 지식과 안목에 구라까지 곁들였으니 이야기가 재미있을 수 밖에.


나는 영랑생가와 유홍준 교수님이 3대 한정식 중 하나로 소개한 강진의 해태식당이 있는 강진읍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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