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 하는 상사를 알아버렸다
프리랜서로의 안정적인 전환을 바라지만, 충분한 작업물이 누적된 것은 아니기에 디자인 포트폴리오용 계정이 아닌 디자인 일상 인스타그램을 운영 중이다. 요즘 작업 물이 꽤 쌓이기 시작하면서 활동명을 넣어 볼까라는 스치는 마음에 디자이너_ 를 타자 치니 자동완성되는 문자 속에서 익숙한 이름이 보인다. 바로 팀장님의 이름이었다.
워낙에 협소한 산업군에 일하고 있기에 설마 하는 마음보다도 빠르게 그 해시태그에 연동된 계정을 찾아가 본다. 팀장님이 맞았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외주자로도 작업을 했었고, 그 작업물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 와중에 대행인 것인지 배 아파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내 마음 깊숙이 있는 팀장님에 대한 감정은 '신뢰'와 '긍정'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주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계정의 작업물을 보고선, 이렇게 외주작업을 하고 회사일의 힘든 일은 나에게 떠 넘긴 것 아니냐는 반감에 사로 잡혔을 것이다. 그리고 몇몇 가지점은 놀라웠다.
첫 번째는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어떤 기미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외주일도 할 수 없이 회사에서 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럴 때면 점심시간을 활용하거나, 밖에 나가서 전화를 한다던가 이런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상사는 점심시간을 따로 먹는 일을 거의 없었다. 또한 어떤 사실을 숨 길려고 하는 행동양식을 지난 2년 동안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장 구석에 앉아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한 회사의 팀장이 되면 아무래도 프라이버시가 더욱 지켜지는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고, 폰트 아이디나 이런 것들도 갑자기 물어서 당황하게 되는 일이 없다. 사실 전에 팀장님에게 폰트 아이디를 물어봐 당황하여 자연스럽게 개인 구독을 하고 있다고 말을 했다. 한 달에 4만 원이나 지출되는 폰트를 따로 구입한다는 것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하시며 구독한다고 반문하시고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물론, 나라도 그럴 것 같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 상사는 내가 외주일을 간헐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 우리 팀장님은 컬러프린터기가 따로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프린트물을 해결하고 있는 것일까?
폰트며? 이미지는?
두 번째 본인의 본명이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이 놀라웠다.
다시 들어가서 게시글들을 살펴보니, 추측건대 회사를 다니면서 한 작업물에는 본인의 이름을 제외하였고, 외주자로서 일했던 작업물에는 실명을 넣은 것이다. 그러나 한 프로필에 있으니 해시태그를 넣고 안 놓고에 상관없이 아주 얕은 호기심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실명검색을 해보니 결과가 없다.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알게 된 것은 확실히 활동명을 가지고 활동해야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역시나 우리 팀장님이다.
디자이너로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나의 다음은 회사가 아니라, 프리랜서였으면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무엇보다 궁극적인 목표는 프리랜서라고 했다. 웃으면서 팀장님은 나중에 디자인 회사 차리면 자기한테 일주라고 하셨다. 아마 프리랜서로는 생계를 유지할 만큼 벌기 힘든 현실의 벽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던 것 같다.
당시, 팀장님의 '유명해야 하는 말과, 영업이 쉽지 않다'는 말에는 뼈가 느껴졌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진실로 한 말씀이었다. 옆에서 본 우리 팀장님의 디자인은 편집자의 의견을 잘 반영해 주면서도 디자인적으로 우수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크롤을 넘기며 본 팀장님의 작품 중에는 이 디자인 예쁘다고 느꼈던 디자인들이 있어 꽤나 놀랐었고, 지금 함께 일하는 현장에서 보여주시는 시안에서도 예쁜 디자인이다. 나도 이런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다시 입사하시지 않았는가? 이것은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 한 프로젝트를 한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 조금 더 해 굳이 나를 고사하고 이 디자이너를 고집해야만 했던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결과물만 보고 판단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의뢰가 어떻게 들어갔고, 어떤 식으로 수정이 진행되었는지 그것까지 세세히 알 수 없다면 그 결과물만 가지고 디자인을 평가할 순 없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에 그 디자이너가 누구인지를 알고 새삼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중에 하나였다. 이 산업에서는 그래도 이름 알아주는 디자이너였던 것이다. 또 하나의 생각이 지나갔다. 유명해야 하는구나.라는 감정이 또 쑥 지나갔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외주일도 받아서 할 만큼의 팀장님의 스케줄 관리, 스트레스 관리,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팀장님이 한 시안과 파일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나의 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프로젝트 들어오거나 하고 싶으면 하라는 말이 크게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