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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OT May 07. 2023

디지털노마드족은 나와 맞지 않았다.

제주도 한달살이 D+12 / 워케이션은 무슨 베케이션이다.

집이라고 말하다가 아차차 숙소라고 바꿔 말할 정도로 나름 이 숙소에 대해 애정이 깊어지고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의미 없는 날들이다. 오늘 내가 머물고 있는 노형동은  강풍주의보가 떨어졌다. 물론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슬금슬금 이동할 수 있는 날씨지만, 오늘 숙소를 선택한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숙소에 머물고 싶었다. 으아니? 이유가 있어야 하나.


생각해보면 우스운 이야기 같은데, 굳이 제주도 한달살이를 하면서 집콕을 하는 나 자신을 보며 어쩔 수 없는  내향인인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장소의 안밖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제주에 혼자 있는 데 성격이 외향인지 내향인지가 무슨 상관인가 싶다. 그러다가, 든 생각은 내가 생각보다  낯선 환경에 대해 즐거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스타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감각이 예민한?! 


신체적으로는 일단 몸이 아니라  두피가 많이 피곤하긴 하다. 햇빛에 지져지고, 빗물에 빠지고, 강풍을 못이긴 우산 살이 자꾸 내 두피를 때리더니 열감이 사라지고 오늘은 머리카락 속 두피에는 큰 뾰루지가 3개나 생겼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이런 살면서 이런 적이 드문데, 두피가 고생이 많다. 이제 모자는 무조건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뭔가  집에서 안전하게 있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정서적으로 생각보다 색다른 곳에 도착하면 도착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즉각적인 쉼을 바라고 그 쉼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장소에 대한 탐색으로 호기심을 채우는데 에너지를 쓴다. 이런 일렬의 과정을 만족스럽게 하려면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여기서 드는 생각이 나는 과연 내가 상상하던 디지털노마드족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저곳을 노트북하나 들고 카페를 다니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 숙소에 굳이 17인치 노트북을 들고 왔고, 어떤 날은 이 노트북을 들고 카페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그날 나는 노트북을 열어보지 않았다. 특히나 뚜벅인 나는 17인치 노트북을 들고 한손에는  모르는 길을 검색하며 찾아가는 것은 어려움이 크다. 그래서 도착지에 오면 바로 쉬고 싶은 기분이 든다. 제주도라는 특이점과 자동차가 없다는 조건에서 발생하는 일일 수도 있지만, 굳이 따지면 다른데 가면 다를까?라는  생각에 쉽게 대답이 안 나온다. 그 이후로도 나는 노트북을 들고나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낯선 곳에 있는 멋진 카페에서 일하기 위해 노트북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떤 환경에서 더 좋은 컨디션으로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보다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한 장소에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깐 안정감이 드는 장소에서 향초를 피운다던가,   조명을 바꾼다던가, 노래를 바꾼다던가 분위기를 바꾸어서 나만의 '이제 일하자'라는 시그널을 보낸 후가  더 잘된다. 새로운 자극은 그 정도가 일을 하는 몰입감을 올려준다.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도 그랬다.  지하철로 30-40분 걸리는 곳의 카페로 가서 당시의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새로운 공간이 주는 익숙지 않음은 나에게 묘한 긴장감을 주는 것 같다. 생각보다 나는 그렇게 세팅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익숙한 카페에서는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이 배경처럼 보이지만, 익숙지 않은 카페에서는 시야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이 통제 불가능한 시각적 정보로 불편 또는 불안 요소로 인지하게 된다. 또 물은 어디에 있는지,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지 그런 새로운 정보자체가 즐거움과는  별개로 오늘 써야하는 뇌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내적 긴장감이 높은 나란 사람의 유형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지금, 제주도에 와서 든 생각은 나는 내가 생각했던 디지털 노마드족과 어울리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을 하는 공간자체는 적당히 익숙한 공간이어야지 더 몰입이 된다. 지금 이 일기를 쓰는 순간에도 적막한 가운데서 낮과  다른 간접조명, 그리고 유튜브에서 아무렇게나 찾은 재즈음악, 타자소리만 울리는 이 방이 온전히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어 즐겁다.


그래서 남은 기간 약 18일 동안에는 카페에 작은 수첩과 연필을 가지고 다닐 생각이다. 아이디어를 기록하거나  시장조사, 간단한 마케팅 정도가 카페에서의 시간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이마저도 후순위로 제주도에서는  조금 더 멍을 때릴 생각이다. 이미 멍을 자주 때리지만.. 이제 서울 집에 돌아 가면 어떻게  지내야 할지에 대해서 정리가 된다. 집에서 공간이 완전히 분리가 되면 더욱 좋겠지만, 분위 로 공간을 바꾸어 활용하는 것이 더욱 나에게는 활용적이다. 집무실을 꾸밀 가치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워케이션처럼 활용할 거라고 온 제주도는 막상 계획 없이 왔기 때문에 하루하루 내일은 무엇을 할지 대충이라도 생각하고, 또 날씨에 따라서 변동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해서 사실상 휴가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리를 하고 정리를 하고 빨래를 하고 이것들이 꽤 시간을 잡아먹는다. 물론, 지금의 나는 이것들을 할 여유가 있고  이런 소소한 것들을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서울에 있는 방을 깔끔하게 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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