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해야 하는데..'로 가득한 하루

한국의 4계절은 쉼을 주지 않는다.

by SHOOT


일주일에 한 번 쓰는 일기인데도 그 시간을 내기 어려워지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면 입술이 터져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세수를 하면 치아교정기를 빼려고 입을 벌리는 순간 짧은 아픔과 함께 입술이 터졌음을 알았다. '그래, 어제도 대략 7시간은 일했지.' 어제는 바로 토요일이다. 갑작스럽게 당겨진 일정과 거절당한 시안을 붙들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재킷에서 경량 바람막이 옷으로 바뀌고 있는 계절이 왔다. 저번 주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긴 것 같은데, 그 일주일 사이 올라간 온도에 맞춰 또 드라이클리닝을 맞길 예정이다. 그뿐일까. 이제는 봄옷 바구니를 들고 와 계절에 맞는 옷으로 옷장을 바꾸어 채워야 한다. 그래 이번 주는 다른 것들도 말고 봄맞이 준비를 하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봄맞이 준비라는 나름의 큰 행사아래에는 세부적인 항목들이 있으니, 겨울 이불을 빨고, 수건을 소독하고, 드라이클리닝 보낼 옷을 고르고, 봄옷으로 옷장을 다시 꾸린다. 이뿐이랴, 매주 하던 일상생활 세탁까지 해야 할 생각을 하니 자연스럽게 다른 생활살림은 미루어지고 있다. 이런 일정에 외주일까지 들어왔으니 시간에 쫓기고 있다.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은 오늘 하루도 회피하고 싶어 늦게 일어난 내 마음을 콕 찌른다. 정신을 차리니 11시 반이다. 그렇다 어제 외주일을 하느라 2시에 잠을 자게 되었다. 남편이 일을 하고 싶다고 카페에 가고 싶다는 말에 부응하여 급급하게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노트북을 챙겨서 나갔다. 사실 집에 독립된 공간이 있기 때문에 굳이 외부에 나가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남편이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을 때 이것을 주춤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바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은 중요하다. 하는 것보다 하기까지의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남편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무언가를 하자고 했을 때 바로 함께 하려고 하는 편이다. 급급하게 선크림을 바르고 간 카페. 생각해 보니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처음으로 들렸다. 남편은 챗 지티피를 활용하여 머릿속의 일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업무적으로 챗지티피를 활용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능력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새로운 문물을 활용하는 재투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투자와 가사는 당장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를 쪼개어 생각하면 외주일을 실행하기에 바쁘다. 올해는 기쁘게도 외주일이 딱 끊기는 그런 기간이 없었던 것 같다. 내심, 머릿속으로는 이렇게 해야지 라는 구상들은 있지만 그 구상들은 실행되지 못한 채 구간반복을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생존하기 급급하다는 말이 와닿는다. 건설적임과 동시에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어, 직접요리도 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활용할 시간이 별로 없는 평일에 요리는 힘들다. 요리의 일부를 쿠팡으로 외주화 하고, 세탁의 일부를 런드리고로 외주화 하고, 청소는 로봇청소기에게 많이 위임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불안지수와 책임감이 높은 나는 외주일이 들어오면, 이것을 처리해 나가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쓴다. 체력을 늘린다고 일주일에 한 번 유산소 운동인 달리기를 하고 있지만 쉽게 체력이 올라가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이렇게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곧 있으면 운동을 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면 나는 이번 주말의 에너지를 거의 쏟아내고 남은 에너지를 쫓기듯 모아 외주일과 또 살림에 전념을 할 것이다. 그래서 급급하게 노트북을 켜서 이번 주를 정리해 본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재투자에 대한 미련과 걱정보다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에 충실한 나에 대한 격려를 보내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