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와 마셜 프린팅 해석
이 영화에는 철학적 함의가 충분하다.
미키가 과연 동일한 미키일까?
인간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건 기억과 의식일까? 등
생각거리를 주는 영화다.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한 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였다.
이 영화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소스 vs 온도의 대결이었다.
소스는 그동안 인류가 쌓아놓은 기술 문명의 진보적 척도였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건 문명이다.
문명의 혜택은 동물이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불을 사용하고, 과학적 원리를 이용하여 첨단 장비를 만들어가는 것, 목적은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것을 손쉽게 제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간다.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피를 흘려야 하는 희생이 뒤따르지만, 그 희생을 최소화할 방법마저 개발하였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 소스다.
마셜과 부인은 가장 인간적인 혜택을 누리는 인물들이다. 다른 무채색 옷을 입은 요원과 달리 그들은 색깔 있는 옷을 입고, 멀건 죽을 먹을 때 소스가 듬뿍 담긴 고기를 먹는다. 여자는 소스 연구에 빠져 있는데, 소스는 우주에서 구하기 힘든 식재료이며, 피와 같은 질감을 상징한다.
반면에 이 영화에서 중요한 정신을 상징하는 건 온도다. 바깥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추운 온도다. 바이러스와 질병이 가득한 곳이다. 미키를 희생양 삼아 바이러스를 지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안전하게 바깥을 탐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을 정말로 살 수 없게 만드는 건 추위가 아니라, 유대감이다. 조종실은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만 유대감이 없다. 성행위가 금지되고 누릴 수 있는 쾌락은 마약밖에 없는 삭막한 공간이다. 성행위가 금지되는 건 칼로리 소모 행위라는 계산적인 이유다.
바깥은 춥고 어두운 공간에서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단세포 동물인 크리퍼가 존재하지만, 그들은 생명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존재다. 추위 속에 살지만 누구보다 강력한 유대가 존재한다. 반대로 안락한 환경이 제공되지만 서로를 믿지 못한 채 갈등에 휩싸이는 삭막한 공간이다. 어느 쪽이 더 추운 공간인지를 다시금 묻는다.
마지막에 마셜과 미키18이 죽을 때, 인간 하나!를 외치며 죽음에 이른다. 영화를 보면 인간 두 명인데 왜 하나인가?라고 할 수 있었던 장면이다. 영화에서 가장 문명을 누렸던 존재인 마셜과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소모품으로 존재하는 미키. 그러나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휴머니즘을 잃지 않았던 미키와 계산과 법칙으로만 머릿속을 가득 채운 마셜 중
누가 인간이고, 누가 인간이 아닌지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이다.
+
(이 영화에서 궁금한 장면일 거 같아서 제 해설을 넣어봅니다.)
꿈속에서 마셜이 프린트가 됩니다. 미키가 가장 괴로워하던 어린 시절 기억은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빨간 버튼”을 눌렀을 때 교통사고가 났고 죽었던 기억입니다. 그러나 마셜이 미키를 영원히 복구시키지 않기 위해 그의 기억과 데이터를 삭제시켰는데요.
엄마를 죽였던 죄책감이 꿈속에서 치유되는 것으로 등장하는 걸 암시한다고 봅니다.
엄마의 자궁 → 프린트 기계
엄마를 살해 → 다음 날 죽은 마셜 부인
프린팅되는 나 → 프린팅되는 마셜
이제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엄마를 죽였던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게 아니라 “빨간 버튼”을 누른 그 날과는 대조적으로 인류를 구원한 날로 거듭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