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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할 때 자신을 아는 거보다 중요한 거

소크라테스 (1)

by 비평교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한 말 중 가장 유명한 말일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먼저 한 말은 아니다. 델포이 신전에 쓴 말이다. 하지만 그게 대수랴. 그동안 외부 세계에 관심을 가진 철학자들을 자기 안의 내부 세계로 관심갖게 만든 코페르니쿠스보다 더 먼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일으킨 선구자라고도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가 물로 이루어진 것인지, 불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따지기 전에,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덕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우선 고민해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 소크라테스 선생님. 아직도 답을 모르겠어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한마디로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다.

메타인지, 자기 객관화, 한때 중요하다고 여겨졌다가 유행이 지나가 버린 듯하다. 자기 객관화가 연애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 번 말해 입이 아프다. 하지만 연애를 하다 보면 몰랐던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내게 이런 모습이 있었다고?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밝은 사람인 줄 몰랐고, 이 정도로 행복을 누려도 되는 사람인지 몰랐던 게 가장 큰 거 같았다. 한 편으로는 이 행복 뒤에 어떤 불행이 총량처럼 닥쳐올까 두려워 하고, 혹여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면 이게 지난 번에 있었던 액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사람은 급작스럽게 좋은 일이 생기면 찜찜한 마음도 생기는 이상한 심리를 가졌다는 거도 알게 된다. 하지만 즐거운 건 즐거운 거다.


반대로, 내가 이런 한계를 가진 사람이고, 내가 이런 이기심을 가진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것도 연애다. 사랑하였던 한 사람에게 이 정도로 질리면 모든 게 달라보이는 거, 다음 사람에게는 어떤 마음을 가져도 그것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을 거란 믿음을 만들어주는 것도 연애를 통해 얻어내는 자기 객관화다.

자기 객관화는 조금 침울하다. 많은 사람이 오해를 하지만 우울증 환자 특징은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자기 자신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외려 낙천적인 사람이 현실을 조금 왜곡해서 자기 편한대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물컵에 물이 반절 정도 남은 걸 보고, 낙천적인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네!” 라고 하겠지만, 우울한 사람은 “물은 절반정도 있지만, 내 상태를 보니 마른 목을 축이기엔 부족해보이네.”라고 말하는 사람일 확률이 크다.


연애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영역이다.

객관의 여지가 들어가기에 조금 비좁은 틈새다. 그 사이에 객관성을 끊임없이 넣는 사람은 아무래도 연애할 수는 있지만, 낙천적인 사람보다는 즐거움이 상대적으로 적을 가능성이 높다.


너 자신을 알라. 그러나,

연애할 때 나 자신을 아는 일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앎은 객관적이지만, 현대 사회의 앎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나를 더 많이 안다는 건 나를 더 사랑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과거에 많이 아는 사람은 여러 현상에서 한 가지 지식을 추려내는 일이었지만, 오늘날 많이 아는 사람은 한 가지 현상에서 여러 가지 해석을 추리해내는 일이다.


자기 객관화 자체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한 가지 도구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가 있고,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똑같은 걸 자르더라도 가위가 필요한 경우와 칼이 필요한 경우가 다를 수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 자기 객관화는 조금 덜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루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자기를 객관화시키는 건 한국 사회에서 조금 이른 거 같다. 성과 중심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더 그러하다. 내게 힘이 되는 존재가 가족보다는 돈을 선택한 사회에 살면, 자기 객관화는 성과와 경제 지표를 묻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니 이제껏 내가 얼마만큼 모았고,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고, 결과만을 묻게 되는 거다.


그리스에는 그리스에 맞는 격언이, 한국 사회에는 한국 사회에 맞는 격언이 필요하다.

연애하고, 사랑하고, 함께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서 자기 객관화를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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