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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척도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 프로타고라스

by 비평교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이것은 인간 우월주의를 나타낸 말이 아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생각밖에 할 수 없고,


절대적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물을 인간의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절대적 기준이 없다.


보잘것없어도 자기 눈에 마음에 들면 된다는 제 눈에 안경과 뜻이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그 말도 어쩐지 옛말이 되었다. 짚신도 제짝이 있거나 제눈에 안경은 시장 논리가 짙어질수록 매력의 다양성이 좁혀오는 게 느껴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체감되고,


예전에 어른들이 했던 말을 그저 경험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예나 지금이나 썩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걸 내가 지금 겪고 있을 뿐.

SNS와 미디어는 점점 더 올바른 연인을 말하고 있다. 좋은 직업, 많은 돈, 화려한 스펙 등으로 가치를 가시화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옛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점점 더 가시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00년대 이후로 절약이 미덕인 사회가 지나갔다.


누릴 수 있으면 누리는 것이 좋다. 당연한 이치다.


다만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고, 누리지 못하는 쪽에 속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걸 알게 되었단 게 문제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그 척도를 정하는 건 인간이다.


하지만 개별적 인간은 아닌 거 같다.


아니 적어도 내가 가진 척도는 아닌 거 같다.


알고리즘과 광고가 내 척도에 자꾸만 훼방을 놓는다.


내가 좋아하는 영상, 상품을 볼 때 내 기준을 가지고 정하지 못하고 자꾸만 척도를 들먹이는 건 광고와 알고리즘뿐만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연인을 선택하는 과정마저도 은연중에 끼어든다.


각종 연애 프로와 육아 프로 이야기는 이미 다른 글에서 너무 많이 나온 예시다.


비교하면 불행해진다는 교훈은 충분히 공감을 얻을만한 내용이다.


개인이 욕심을 줄이고, 비교를 안 하는 개인적 책임으로만 회피해서 문제지.


MBTI 역시 연인을 가늠하는 척도로 이용된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를 척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좀 더 객관적이고, 좀 더 통계적이고, 좀 더 ‘과학적’인 방식을 원한다.


" 나는 MBTI를 믿지 않아. 재미로 할 뿐이야.

하지만 너는 왠지 INTP일 거 같아. 왠지 그런 점이 INTP 같았거든."


곁에 있는 연인은 올바른 연인의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 올바른 연인은 자기 척도를 사용할 때 비로소 등장한다.


연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존재. 해당 조건이 맞지 않으면 이성 자격이 박탈되고야 만다.


이 척도는 과연 개인이 만들어낸 걸까, 사회가 만들어낸 것일까.


사랑은 이제 시장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상품을 쫓던 인간은 상품이 되었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결정된다.


진리는 상대적이다. 사랑이 진리라면 사랑도 상대적이어야 할 텐데 오늘날 사랑은 올바름의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믿는다.


사랑에 정답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래서 정답에 얽매이는 세상이다.


진리가 상대적일수록 진리에 목매게 된다.


어느 누가 고통이 깃든 사랑을 하려고 할까. 고통이 깃들수록 진리로부터 멀어진다.


진리는 값지고, 달고, 고통이 없으며, 만족감을 주는 것이니까.


사랑은 부수적인 산물일 뿐 다른 것을 얻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는 세속적인 척도에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


그토록 갈구했던 시간이 낭비였을지도 모른다는 게 현대인의 머릿속에 드는 건 당연하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이제 옛 슬로건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절실히 생긴 건지 모르겠다.


정말로 인간적인 척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시장중심적 척도가 아니라, 정말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인간적인 척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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