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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모든 걸 환원할 수 있을까?

데모크리토스 원자론

by 비평교실

데모크리토스는 이 세상 모든 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사랑도 쪼개지지 않는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을까?


원자의 결합 방식에 따라 세상은 이리저리 바뀐다. 사랑에도 쪼개지지 않는 무언가의 구성이 존재할까?


사랑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어디까지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최소한의 사랑은 어디까지인가를 기준으로 정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철학자가 골머리를 썩였을까.

사랑은 결국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지만, 짝사랑은 사랑이 아닌가?


혼자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 사랑은 어디서부터 사랑이라고 이름을 부르고, 또 혼자만의 사랑이 커져서 고통스럽거나 상대를 괴롭게 할 때에 어디서부터를 사랑이 아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이유로 쫓아다니는 건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면, 고백을 갑자기 해버려서 상대에게 고통을 준 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일까. 혹은 짝사랑으로 인해 자신이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사랑을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원자로 바라볼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할 거 같다.


데모크리토스도 무엇을 원자라고 부른 적 없지만, 사랑 역시 어떤 것을 원자라고 부르지 못하지만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 사랑 때문이 확실하다.


사랑을 어디서부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없다는 건 아니다. 어쩌면 사랑은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연속적 양자화로 구성되어 있을 수도 있는 거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랑이 고통을 준다고 하여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건 부당한 정의라는 거다. 고통을 주는 사랑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걸 또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랑의 성질에는 분명 고통도 수반되어 있다.


현재 상태를 벗어난다는 건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사랑은 혼자 있는 현재 상태를 벗어난다. 상대를 통해 성장을 이루어낸다. 따라서 사랑은 고통을 수반한다. 사랑이 즐겁기만 한 일이라면 사랑을 통해서 성장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을 거다. 사랑은 갈망이고, 욕망이고, 내적 성장을 가져다주고, 이는 필연적으로 고통스러운 행위다.

사랑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무언가로 나타낸다면 행복이 아니라 고통이 나올 것이다. 관계는 중립적이다. 고통스러운 관계를 지속하여 밀고 나가고자 하는 의지는 사랑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마음이 사랑을 지속하게끔 만든다.


그리스에서 마음은 영혼이었다. 영혼은 물체를 움직이게 하는 제1 원동력이다. 사랑을 지속하게 하는 게 자신의 마음이라면, 사랑은 스스로 하는 거라면, 사랑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자기 자신에게 있지만,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고통스럽다. 마치 뇌나 심장을 자기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초의 원자가 무엇인지 안다고, 사랑을 알 수 있을까. 원자의 결합 방식에 따라 이리저리 사랑이 바뀌는 게 확실하다. 원자에 가장 가까운 속성이 사랑이라는 것도 맞는 거 같다.

부모와의 사랑, 형제와의 사랑, 인류의 사랑, 연인의 사랑, 용서하는 사랑, 미워하는 사랑 모두 관계와 형식에 따라 사랑을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에 따라, 사랑의 농도를 얼마큼 짙고 옅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모든 걸 바꿔놓는다.


사랑을 구성하는 최소 양식은 타자성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마저, 스스로를 타자화시켜야 가능한 일이다. 자신에게 선물을 해주는 건, 자신을 관념적으로 둘 이상 나누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사랑은 나 이외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이기심을 넘어선다는 건 그런 의미다.


사랑을 원자화시킬 수 없는 이유는 물질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로 환원되기에 그렇다. 다른 이로 환원된다면 그것은 결코 스스로의 속성으로 만들 수 없기에 너머에 있는 환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수수께끼인가 보다. 타자로부터 오는 신호에 나는 반응하여 그 환상에 좇도록 만든다. 사랑은 타자로 환원되기에 우리는 타자를 갈망하게 되고, 닿을 수 없게 만들며, 영원히 그것을 신비화시키는 원자 형태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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