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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사랑의 원소

엠페도클레스, 사랑이 뭔가요?

by 비평교실

세상을 이루는 네 가지 원소는 불, 물, 땅, 공기다.

이제 고대 철학자들은 더 이상 세상의 근원이 단 한 가지의 자연적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지 않게 되었다.

뜨겁고, 차갑고, 무겁고, 가벼운 다양한 구성으로 변화한다.

나무가 불에 타면 공기와 흙으로 변하는 방식이다.

세상은 본래 하나였으나 다툼으로 분해가 되었고, 사랑으로 재탄생되었다.

만물은 사랑과 다툼이라는 요인으로 물질들은 서로 흩어졌다 결합하였다를 반복하며 생명체를 만들어갔다.

사랑하는 이와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도록 만들어졌다. 신의 조화인지 유전자의 명령인지 알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다툼도 필연적이다.

만나고, 아끼고, 멀어지고, 헤어진다. 한 번의 만남으로 ‘너’의 세계를 경험하고,

한 번 헤어지며 ‘우리’의 세계는 분리된다.


만날수록 ‘나’의 세계는 변해간다. 내 세계가 변해가는 것이 긍정의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배신하고 쓰라릴수록 내 세계는 극점이 다다르고, 점점 차가워질지도 모른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 세계가 결합하면 순탄한 항해가 시작되듯, 아름다운 바다 앞에서 여유를 부리며 파도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결합과 분리가 반복될수록 한 차례 더 나아가게 된다. 나는 경향성이 강해지고 고집이 세지고, 모든 게 명확한 세계로 나가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불명료해진다.


나는 사랑의 순환 속에서 우리가 되고, 우리는 그 순환을 거쳐 결국 나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사랑은 뜨겁다. 나는 내 감정에 휘감겨 있었다. 세상 모든 게 그 사람에게 맞춰졌다. 내가 눈을 뜨고, 일을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에 들기까지 모든 삶은 그 사람을 위한 내가 되고 싶었다. 지구상에서 오직 인간만이 불을 다룬다. 불은 인간이 짐승과 다르다는 징표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불이다. 짐승은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이다. 인간이 아닌 나다운 사랑을 꿈꾼다. 사랑은 특별하고, 아름답고, 위험하고, 지워지지 않는 화상자국을 남기고 싶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만들고 싶다.


그 불꽃은 형언하기 어려운 신성함을 연상시킨다.



공기


사랑은 가벼워.

나를 날아오르게 해. 하루 종일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그 어떤 일도 가볍게 해낼 수 있어. 사랑의 역경이 무거울수록 나는 점점 가벼워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부력이지. 나를 들뜨게 만들어. 공기가 움직이지 않으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지 몰라. 사랑의 흐름이 격렬해질수록 시원함이 느껴져. 우리는 함께 상쾌함을 맛보고,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어. 사랑을 공기처럼 하라고.


하지만 착각하지 마. 사랑이 가볍다고 해서 관계까지 가벼운 건 아니야. 가벼운 공기는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어. 100년 된 나무를 쓰러뜨리고, 벽돌집을 날려버리는 건 바로 아주 가벼운 나비의 날갯짓이라고. 아무리 강한 태풍일지라도 태풍은 여전히 가벼워. 가벼워서 주변의 모든 걸 날려버릴 수 있지.

내가 무겁지 않은 거 같다고? 천만에. 내 진심은 그 어떤 깊은 바닷속 못지않아. 지구 내부로 들어갈수록 내 진심에 짓눌려 움직이지 못할걸. 그 어떤 잠수함을 타더라도 내 진심을 볼 수 없을 거야. 지구 중심부로 들어올수록 강해지는 건 중력이 아니야.

공기의 압력이지.




사랑은 무겁다.

하지만 무겁다고 해서 가라앉게 만드는 건 아니다. 거대한 함선이 물에 뜨는 이유는 함선이 가벼워서가 아니니까. 무거움은 우리를 솟구치게 만들어. 사랑은 모든 것에 본질이며 완성을 이루는 토대다.


모든 생명체의 영양이다.

모든 건 결국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있다. 하지만 흙에 깃든 사랑을 보라. 모든 생명체를 솟구치게 만드는 힘이다.

자연의 법칙마저 거스르게 만드는 진리다.

흙이 있는 모든 곳에 씨앗 한 톨이 있다면 그 씨앗은 기필코 땅을 뚫고 나온다. 한 줌의 빛은 흙 속에 있을 때 더욱 빛나는 법이다. 고독이 있을 때 사랑은 더욱 깊은 성숙을 이룬다. 씨앗은 땅속에 있을 때 성장하고, 인간은 동굴 속에 머물 때 성숙을 이룬다.


사랑하는 사람과 진정으로 함께할 수 있는 순간은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때 가능한 일이다. 중심이 잡히지 않는 사랑은 모래알처럼 바스러질 뿐이다. 흙은 구울수록 단단해지고, 단단한 깊이를 만들고, 우리를 근원으로 돌아가게 한다.



사랑은 차갑다. 모든 걸 이상화시켰다가도 그 모든 게 덧없는 이상에 불과하단 걸 느끼게 한다. 이상화된 사랑은 점점 감각으로 되돌아온다. 비구름은 결국 바다를 위해 존재하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현실로 돌아가길 바란다. 사랑에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사람을 아무런 목적 없이 사랑하였지만, 그 사람도 분명 나를 목적 없이 사랑한다고 말하였지만.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하나의 목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단 걸 느끼는 순간 모든 걸 초연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사랑의 모양이 변할 뿐 본질은 바뀌지 않는 줄 알았어. 그래 맞아. 모양이 변한 게 아니라 우리의 본질은 원래부터 현실적이었던 거야.


우리는 서로 결합하고 짙고, 따뜻한 온기를 느꼈어. 그걸로 충분해.

한 방울의 물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방법은 바다에 뛰어드는 거래.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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