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논의 역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내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안다면 그대는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내가 얼마나 큰 고통에 시달리는지 안다면, 그대는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야.
내 사랑은 어떻게 그대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마치 제논이 제시한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이야기와 같다. 펠레우스의 아들이자 발 빠른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가 100m 달리기 시합한다고 가정하자.
아킬레우스가 10m를 갈 때, 거북이는 1m를 간다.
아킬레우스가 1m를 가면, 거북이는 0.1m를 간다.
아킬레우스가 미세하게 앞으로 갈 때마다 거북이도 미세하게 앞으로 가므로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킬레우스와 거북이는 결코 결승선에 도달할 수 없다.
내가 보낸 사랑이 그대에게 전달되지 않는 이유도, 그대에게 사랑을 보내면 그대 역시 나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내 사랑을 그대에게 보낸다. 내 사랑은 그대에게 전달되었을까?
함께하는 사랑마저도 짝사랑이라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전달한 사랑이 정말로 도달하였는지 알 도리가 없다. 전달한 사랑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사랑은 재귀적이다. 닿지 않는 사랑이 돌아올 때 한없는 고통으로 돌아온다. 처음 그 신비한 빛깔과 성질을 잃어버리고 다시 돌아온 사랑은 어느새 향도 빛깔도 잃어버린 채 초라해진다.
나는 길길이 날뛰는 사랑을 붙잡지 못한다. 내 사랑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볼품없이 돌아온 사랑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니면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제논이 피타고라스학파에 제기한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문제>는 기원전에서 시작하여 19세기에 이르러서야 해결된다.
무한의 영역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무한이라는 개념은 유한한 인간이 생각할 수 없다. 마땅한 아이디어도 없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사랑은 여전히 호르몬인가? 내게서 내뿜는 호르몬을 상대방에게 주입한다면 나를 사랑하게 될까?
내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
페닐에틸아민, 바소프레신, 옥시토신은 내 사랑이 가진 의미를 설명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을까?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전혀 알 수 없다. 심지어 나 역시 그 사람을 내가 얼마큼 사랑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그 사람을 얼마큼 사랑하는지 모르지만, 고통은 확실히 전해진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건 내 사랑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어쩌면 사랑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물질적 존재인 인간이 생각하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는 걸 설명하는데 2000년의 세월이 필요하였다. 사람이 사람을 설명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물론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는 건 당장이라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도 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전달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미안함과 동시에 매정한 자기 자신을 한탄하게 된다.
나는 너를 사랑해. 서로 유사해서.
나는 너를 사랑해. 다른 점이 많아 신선해서.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단순한 무언가로 환원되지 않는다. 무언가로 환원하려는 순간 사랑은 무한히 분할되어 금세 사라질 것만 같다.
분명 내 사랑은 한없이 크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그대가 서 있는 위치로 다가가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을 전달하기에 한없이 무한한 내 사랑은 그 거리에 가닿을 수 없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없다. 알고 싶다.
사랑은 무한하므로 절대로 그대에게 닿을 수 없다.
한 번 시작된 사랑은 어디에서 출발하였는지조차 알 수 없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다. 내 사랑에 결승선도 정해지지 않았다. 닿을 수 없는 사랑을 감각하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사랑을 보낸 자만이 사랑을 보냈단 사실을 알 뿐, 수신자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재귀적으로 돌아온다.
펠레우스의 아들, 발 빠른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할 때 볼품없이 초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