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게르트 슈나이더 저)
사람들이 전쟁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정복, 권력경쟁, 자원, 식민주의, 방어, 헤게모니나 세계관, 맹목적인 신앙 등 다양한 원인으로 전쟁이 촉발되곤 한다. 안에서부터 갈등이 촉발되어 일어나는 내전도 있으며, 주변국의 전쟁에 휩쓸려듯이 참전한 국가도 있다. 전쟁의 명분이 항상 실제와 일치하는 것은 아닌데, 명목상으로는 '테러와의 전쟁'이었으나 실제로는 자원 약탈이 목적인 경우도 있었으며, 종교 전쟁을 빙자한 지배 세력 확장도 있었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은 전쟁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중점이 되는 부분은 전쟁이 '보통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징집되어 전쟁터로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가족과 아이들의 삶을 통해서 국가가 외치는 대의명분이 아닌 개인의 삶을 뒤흔들어놓은 전쟁의 실제를 그려내고 있다. 강제로 전쟁을 위해 징집된 군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유는 정말 국가에 대한 의무감을 갖고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서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인 빌헬름은 전쟁터에서 아래와 같은 편지를 쓴다.
......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지 모르겠군. 여기 있는 우리 대부분은 오직 어떻게 하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다오. 조국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온몸이 마비된 것 같고, 다들 완전히 무감각해졌거든......
...... 사랑하는 여보, 나는 살아 있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오. 나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오. 처음 이 전쟁에 참가할 때 가졌던 확신은 더 이상 없소. 나와 하인리히 중에서 그 애가 더 현명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오. 지난 2년은 나와 많은 전우들의 생각을 바꿔 놓았고, 죽음과 고통은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들었소...... 신께서 고향에 있는 우리 가족과 늘 함께하길 바라오. 항상 당신과 우리의 어린 아르투어를 생각하고 있소. 먹을 것이라도 충분히 있었으면 좋겠구려.
이를 보면 끝나지 않는 지루한 전쟁에서 군인들이 계속해서 싸우는 이유는 애국주의에의 헌신, 대의명분을 위한 희생이 아닌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필사적 바람이다. 한편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정파, 국가들, 국가 연합, 적대적인 무리들'은 연일 언론 조작을 통해 전쟁을 정당화하고 명분을 홍보하면서 그들이 실제 전쟁을 일으킨 이유인 탐욕과 이기주의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게다가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고, 정전이나 휴전으로 이어진다. 그러는 동안 실제 전쟁터에서는 군인들이 비참하고 잔인한 현실의 전쟁 희생자로 전락할 뿐이다. 또한 참전국의 국민으로 남아있는 가족들도 언제 전쟁이 끝날 지 알 수 없는 막연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진실로 '죽음만이 넘쳐 날 뿐 아무도 승리할 수 없는' 것이 전쟁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 이전부터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 내부에 잠재된 폭력성이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성보다 강력하기 때문일까? 저자는 이에 대한 가상의 찬반 토론을 통해 이러한 회의주의적 시각을 비판하고, 인간의 이성을 통해 충분히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전쟁의 민낯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가 평화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전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와 개인이 나서서 평화를 수호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진행 중이며, 최첨단 무기를 갖춘 현대식 전쟁은 더욱 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22년 간의 독재 정권 축출 후 무정부 상태에서 20년이 넘도록 내전이 이어지고 있는 소말리아에서는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수십만 명이 굶어 죽었다. 사람들 스스로 평화 수호의 중대성을 깨닫고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평화 연대 세력을 강화하는 것만이 아직도 사방에 존재하고 있는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쟁과 평화의 책임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