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옷차림부터 힙하게!

by 로라

옷이 날개라고 했는가?

직장을 다닐 때 입던 옷들을 한번 꺼내보지도 않고 걸어두기만 한 지 제법 되었다.

어떨 때는 한번 내려보았다가 작을 것이라 생각하니 다시 걸어두고.

버리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계륵이 되었다.

퇴직을 한 후 집에 있어보니 바지는 간편 운동복 두 벌이면 정말 족했다. 신발도 운동화와 편한 단화 한 켤레면 충분했다.

그럼 저 날개들은 어떡하지?

묘하게 작아지는 옷들은 이미 팔두께에서 불편해서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옷을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옷이 좋아서인지, 애정이 있어서 인지, 추억인지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저 옷은 남들 앞에 서야 할 때 입기 딱 편하면서도 정장스러운 옷인데.....'

'저 옷은 비 오고 흐린 날 출근할 때 제법 깔삼했는데.....'

바깥에서 비가 와서 그런 것일까? 옷을 정리하는 마음에 비가 내린다.

다시는 오지 않을 내 청춘.

불과 퇴직을 3~4년 남겨두었을 때도 나는 무척 담담했다. 늘 옷을 차려입고 나설 때 바쁨과 짜증조차도 오늘은 추억으로 다가온다.


계속 줄이려고 하는 마음만 가득하고 옷을 이리로 저리로 옮기고 결국은 조금 손절 치는 과정을 반복한 후에야 진짜 정리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나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누군가에게 나누어주기도 하고 재활용에 넣기도 하고 많이 비웠다. 비웠음에도 여전히 드레스룸은 입지도 않을 아니 입은 적도 없는 옷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 옷은 비싸게 산 옷이라서 좋은 옷이라서 못 버리고

저 옷은 기념할 만한 기억이 내장된 옷이라서 다시 넣고

또 이 옷은 언젠가는 입을 것 같아서 다시 접고......

나를 덮어주는 껍데기들은 그냥 옷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분이었고 나를 표현하는 도구였다.


벌건 대낮에 외출이 아직도 어색하고 두렵다. 길을 가다 보니 어르신들이 느리게 느리게 걸어 다닌다.

누구 하나 이야기를 걸거나 서로 마주 보고 웃지도 않는다. 한국사람들은 마주 오는 사람에게 웃거나 스몰톡을 하면 이것은 정신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상이다.

우리는 웃으면 안 된다.

우리는 눈 빛을 교환하면 안 된다.

그저 차가운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냥 걸어가야만 한다.

그런데 얼굴도 무표정한데 길거리의 어르신들 옷차림이 왜 이런가? 너무 매너리즘 아닌가? 왜 모두 캡 모자를 쓰고 계신가?

나는 아직 어르신의 옷차림에 들고 싶지가 않았다.


일단 옷이 날개니 날개부터 좀 바꾸어봐야 옆구리에 날개가 생기든 걸음걸이가 힙해지던 할 것 같았다.

댄디한 스타일의 약간 중성적인 옷차림을 좋아하지만 이미 체형이 크고 키는 작은 몸뚱이에 정말 힙한 옷차림은 살짝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도 같았다.

그래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일단 픽한 옷은 검은색 기장이 긴 힙한 카고바지와 검은색 두툼한 어글리 운동화였다. 그리고 상체가 크고 하체가 얇아서 옷 입기 불편하지만 카고바지 스타일에 맞도록 약간 위옷을 붙으면서 기장이 조금 짧은 느낌만 나는 윗옷을 매치하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었다.

던져두었던 워치를 찾아서 충전을 한 후 왼쪽 손목에 얹고 어르신 티가 나는 금팔찌를 빼서 서랍에 잠시 감금해 두었다. 장미향이 나는 향수를 살짝 덧붙여보았더니 어찌 저찌 과하지 않게 힙한 느낌이 조금은 들었다.


로즈골드색 헤드셋을 찾아내어서 오랜만에 충전을 시켰다. 그러나 결국은 헤드셋은 너무 과해서 슬그머니 벗어 가방에 넣었다.

자신이 없었다. 색깔이 무채색이었으면 끼고 갈만은 했는데 아직 너무 어색한 것을 보면 과유불급일지도 모른다.

풀 착장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오늘은 신촌과 이대를 통하는 뒷산 길을 걷는 모임에 참여를 해보았다.

젊은 대학생들의 거리라 그런지 에너지가 뿜어나오고 생동감이 드는 활기가 느껴졌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모습을 비추어보니 살짝 나쁘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눈치 봐가면서 사진도 한 장 찍어보았다.

옷이 진짜 날개인가? 훨씬 자유롭고 몸이 편하며 같이 만난 친구들이 옷차림이 아주 힙하다고 말해주는 이도 있으니 어느 정도 성공한 놀이이기도 하다.


동그란 그릇에 담기면 동그란 물이고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난 물이다.

내 마음이 긍정적이고 젊으면 나의 옷차림도 젊고 활달한 기운을 주는 것 같다.

다음번 놀이는 머리를 탈색을 해서 밤에 홍대거리를 걸어볼까? 머리를 펑크 타일로 파마를 해서 걸어볼까?

설마 정신 나간 아줌마로 흉보진 않겠지?

에잇 그러든 말든! 내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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