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타는 아빠, 타로 보는 엄마

by 로라

아이들이 초등학생 시절 난 큰 아이에게 엄했던 것 같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고 큰 아이도 살아가는 생에 딸도 처음인지라 서툴렀겠지만 그 당시 난 대학원에 다니랴 아이 둘을 키우랴 정말 많이 바빴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진학한 대학원인데 첫 수업 후 바로 휴학이나 자퇴를 고민할 만큼 워킹맘으로서 힘든 일로 지금도 생각이 든다.

그러나 힘든 시절 대학원 상담 공부는 나의 인생을 참 많이 바꾸어놓았다.

어느 강의 시간 도중에 엄격히 공부만 시키던 큰 아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강의 도중 화장실로 뛰어가서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그 후 참 많이 변했다.

상담공부는 남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하게 하는 공부임을 깨달았다.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가까워지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아이는 어쩌면 '이 엄마의 속마음'이 뭘까 굉장히 의심했을 것 같았다. 진정으로 회복되기에는 아마도 상당히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사과란 받아들이는 이가 수긍할 때까지 진정 어린 사과를 하는 것!!!


상담 공부는 남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게 하는 성찰의 공부'쪽으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특히 영화를 통한 인간심리 상담 분석 수업은 지금도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한 학기로 기억이 된다.

유독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객관적인 분석으로 냉철한 조언가로서 직장에서도 젊은 동료들과 숱한 속마음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었다.


그러다 우연히 사주팔자 명리 공부를 접하게 되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받아오는 8글자 사주는 어쩌면 발악을 해도 변하지 않을 큰 틀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심취하다가 소름 끼칠 만한 전율을 느끼고 다시 고이 접어 마무리하였다. 삼성 이재용 회장과 한날한시에 태어난 이들이 모두 이재용이 아닐진대

그 변화와 다름은 어디서 오는가?

그리고 왜 점을 보는 이들은 과거는 맞추지만 미래는 틀린가? 그 고민에 한동안 슬럼프가 왔기 때문이다.

나 혼자 결론을 내렸다. 정말 내공이 있는 사주 풀이가 아니라 재미로 보는 사주나 점은 자신의 인생의 나침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어쩌면 너무 위험한 일!!!!


그런데 사람들은 어중간한 사주 풀이에는 민감하고 자신을 옥죄는 보이지 않는 사슬로 여기며 은근 의식의 지배를 받으면서, 현실에 바탕을 둔 상담에는 너무 관대하였다. 구속력이 없으니 그렇겠지만 상담을 해주는 입장에서는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특히 왜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이들이 각자 다 다른 무늬의 궤적을 그리는지

역술인들이 왜 과거는 맞추지만 미래는 못 맞추는지.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들은 법륜스님의 강의에서 난 머리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지나 온 과거는 이미 형성된 것이므로 점을 볼 때 보이지만 미래에는 본인의 "Will(의지)"가 어느 정도 개입을 하므로 맞출 수 없다는 명쾌한 이야기였다.


예를 들면, 어느 신점을 보는 사람이

"당신은 게을러서 평생직장 생활을 잘하기가 참 힘들 수 있다~"라고 말을 해주었을 때

어떤 이는 '그래, 내 팔자가 그런 거야... 어쩌겠어'라는 마음으로 그리 살지만 어떤 이는 '내가 게을러서 직장생활을 못한다고? 내가 이겨내 보리라'이러면서 자신의 시간을 컨트롤하고 성실히 살아간다면 그날 본 점은 미래에 결과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타고난 사주팔자는 옴짝달싹 못하는 운명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는 나의 Will이 한 두 스푼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운명에도 나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니 행복한 일이다.


반면 상담은 어떤가?

내담자와 상담자가 자기 앞에 다가온 현실을 피하거나 부정하지 않도록 딱 맞닥뜨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내가 노력할 점 등을 이야기하지만 어쩐 지 구속력이 거의 없어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상담은 내가 틀을 깨부수고 나올 수 있는 현실적인 열쇠를 찾고자 하며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운명적인 것에 이상할 정도로 지배를 받고

현실적인 조언에는 이상할 정도로 가볍게 응대를 한다.

이 두 가지의 교집합은 없을까?

그러다가 타로를 접하게 되고 나는 타로가 상담과 사주의 교집합으로 적용시켜 보기로 하였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이 생각을 구체화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것이 쉬운 일인가?

그래서 다시 공부를 차근히 해보기로 했다.

사주명리 공부를 가르쳐 준 내 친구는 우리 둘을 서로의 "점 친구"라고 명하면서 이런 문제와 교집합에 대하여 참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사람들은 앞으로는 미신이니 무속이니 떠들면서

뒤로는

다들 자기의 결혼이

이 힘든 연애가

나를 옥죄는 부모가

죽이고 싶은 직장 상사가

마이너스까지 끌어다 몰빵한 주식이 코인이 궁금하여 끊임없이 점을 치고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정치인들은 앞에서는 무속이니 미신이니 하면서 뒤로는 자기들의 정치행보를 끊임없이 알아본다.

이 얼마나 모순 덩어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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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는 젊은이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 그냥 지나가다 이야기를 시킬 수도 없고 학부모와 동료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 기회도 없다.

감정에 대한 배려와 공감, 직면을 같이 나눌 대상도 없다.


그래서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타로를 배워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사주팔자 보러 가는 것은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면서도 타로점을 보러 가는 것은 하나의 "유희"같이 생각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았다.

타로는 '점친다'라거나 '맞추어봐라'라고 하지 않고 '타로 리딩'이라고 한다.

이 말은 같은 상황을 두고 내담자랑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그 당시 나온 카드를 읽고 해석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살짝 "나의 Will"을 몇 스푼 씩 뿌릴 수 있도록 거들어 주고 마음을 읽어줄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년월일 태어난 시를 말해주고는 빤히 바라보며 "한번 맞추어보시지~ 맞나 안 맞나 두고 보자~" 이런 운명을 점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의 매체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관심은 자꾸 넓어져갔다. 단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얄팍한 수를 부려서 대화의 끈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 때문인지 어느 정도 이상 깊어지지는 않고 즐거운 대화의 연결고리로만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 속물인가?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면 속물이면 어떠리?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것 같은데

어쩌면 지나가다 이런 간판이 보일지도 모른다.

'커피 타는 아빠, 타로 보는 엄마' 남편에게 계속 주입시켰던 인생 2막 커피집 이름이다.

지나가는 길모퉁이 허름하고 작은 커피집의 상호 명이 만일 '커피 타는 아빠, 타로 보는 엄마' 간판이 보인다면 타로를 리딩하는 점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젊은 친구들과 눈 마주치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 안달 난 할머니가 차린 커피숖이구나 하고 들러주시길......

거기서 나랑 대화를 나누고 여러분의 인생의 길이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커피는 유료지만 타로 리딩은 무료일 테니까.


아, 참 큰 딸과 나는 지금은 절친 사이라고 자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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