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친구들끼리 비교하는 따위는 좀 사그라드는 가했더니 이제 신세 한탄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군요.
격정의 시기 20대를 보내고
결혼과 연애로 비교되는 30대를 보내고
자식이란 문제로 40대를 보내니
노후와 부모님이 다시 50대 제 앞을 막아서게 됩니다. 다들 이때쯤은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앞으로 갈 길은 구만리인데 그 구만리 길이 명쾌하지가 않고 늘 안개 낀 것 같이 뿌연 그 느낌 우리 알잖아요?
부모를 봉양해야 하고 자식이 내 노후를 책임져주지 않는 "처마세대"라고 하니
어찌 걸어온 뒷길은 안개가 없을 것이며
앞으로 마주 할 길은 백척간두가 아닐는지요.
친구들이 다들 하얀 서리를 머리에 이고 살 나이인지라
어느새 직장을 퇴직한 친구도 있고
남편을 먼저 하늘로 보낸 친구도 있고
친정 엄마 등쌀에 지쳐버린 친구도 있고
가지 각색 아롱이다롱이 고민들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각자의 사정들이 있겠지만 하나같이 공통된 고민은
'아직 독립하지 않은 자녀'들 때문에 힘들어했어요.
옛날에는 자식자랑도 하고
집 늘린 자랑도 은근히 하고 깨발랄하더니만
이제는 그저 위안이 되는, 서로 동조할 수 있는 이야기들 뿐이네요.
우리가 밤새 격정을 토한 이야기는 바로 'k장녀'이야기였습니다.
k-pop, k-뷰티, k 방역까지 온갖 것에 k를 붙이는 지라 저는 빵 터졌는데 듣고 보니 저도 그 지독한 'k장녀' 증후군에 시달렸던 사람이네요.
집에서 연로하신 친정부모님과 시부모님을 받들어야 하고
자식을 떠맡고 대접받지 못하는 우리 시대인지라 k장녀이야기는 한층 서글픕니다.
아들만 우대하고 딸에게는 온갖 의무와 보살핌을 요구하시는 친정부모님 때문에 힘든 이야기에 날밤을 새웠네요. 그 이름하여 부모님께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k장녀입니다.
저는 오빠와 남동생을 대신하여 어깨에 쌀가마니를 올리고 산 사람인지라......
쌀 한 가마니가 예전 20Kg인 것은 아시지요?
현생 몸무게도 힘든데 쌀가마니를 양어깨에 올리고 산다는 기분은
승모근이 딱딱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입니다.
요즘 친구들이야 부모가 절절매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지애가 발동해서인지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라테이즈 홀스~" 하는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K장녀 앞 시대에는 K장남이 있었을 터입니다.
한때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장남들은 죄다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장남들의 어깨에는 아마도 쌀 스무 가마니가 얹혀 있었을지도 몰라요.
요즘은 스스로 많이 돌아봅니다.
인생을 어찌 살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는지
자식과 나와의 인생에서 내가 취해야 하는 포지션이 딱 어디까지인지........
k장녀 트라우마는 우리 세대로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식이 자유롭게 당당하게 자기 살고 싶은 곳에서 자기의 삶을 살기 바란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편이 자꾸 자식에 대한 염원과 생각으로 채워지네요.
늙어서 이리 허전할 줄 알았으면 그때 그 시절 딸을 그 먼 곳으로 보내지 않았어야 하는데요.
가장 황금기인 시절을 늘 시집문제로, 친정문제로 끊임없이 갈등하고 살았던 저는 내 아이는 직장에서의 황금기 등을 자유롭게 넓은 세상에서 살라고 끊임없이 등을 떠밀었는데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금에 와서야 내가 한 일이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지
살짝 머리에 쥐가 내립니다.
젊은 시절에는 어서 육아시절만 벗어나자
대학만 진학시키자
졸업만 시키자
취직만 하면 끝나겠지
그랬더니 이내 결혼은 해야지 하는 상황들이 무슨 청승인지 모르겠어요.
그다음은?
멀리 떨어져 살 준비를 하는 자식을 생각하면서
지리적 거리는 떨어져 있으나 큰 딸도 자기를 위해 희생한 부모에 대하여 k장녀 프레임에 갇혀있을까 자꾸 생각해 봅니다. 나는 쿨하다 했지만 어쩌면 아이는 어깨에 쌀가마니 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진짜 싹둑 잘라주어야지 하면서도.....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술잔처럼 자꾸자꾸 깊어집니다.
술잔 속에 사랑도 우정도 다 녹아들어 가지만
술병이 비어갈수록 자꾸 머릿속에 더 치고 들어오는 "자식"에 대한 생각으로
우리의 머릿속이 이미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있다는 것이니까요.
한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에 몰입할 정도로 우리나라 가족제도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했던 저로서는 오늘도 맹세해 봅니다.
해운대 바닷가 달빛이 물결에 어우러져 아주 휘청휘청거립니다.
나를 늘 힘들게 했던 k 장녀 너 이제 내가 끊는다.
진짜로 두고 봐라 내가 끊나 못 끊나!!!
장담하건데
밀가루와 흰설탕을 끊는 것 보다는 쉬울거라고 확신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