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 비굴, 포기 선택의 기로에서

by 로라

10대의 인생 지배 화두는 "친구"

20대의 인생 지배 화두는 "사랑"

30대의 인생 지배 화두는 "돈"...... 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인가.

40대이후의 인생 지배 화두는 "자식" 이지 않을까?


이 세상 운전이 제일 쉬운 것 같아요.

P, N, D, 그리고 후진

아울러 블랙박스에 후방카메라에 사양이 높을수록 차선을 이탈하지도 않고 온도에 따라 의자도 데울 수 있는

각양각색의 기능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있고 실수가 생기는데

자식을 키우는 것은 기쁨과 더불어 행복을 양념하기도 하지만 정해진 규칙이 없는 것 같아요. 언제 파킹을 해야는지 언제 드라이브의 속도를 올려야 하는지요. 다른 최점단 기능이 다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인생에 있어 자식을 바라보는 모드는 그냥 굴복, 비굴, 포기 이 세 가지의 모드만 있는 것 같답니다.


우리 집 아이는 본인의 입으로 늘 사춘기인 것 같다고 말했지요.

초등4학년부터 하도 수시로 들어서 우리는 이제 흔쾌히 농으로

"또 사춘기야?"하고 받아 칠 정도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 유춘기 등등 점점 그 나이가 하향이 되고 자기 스스로 "사춘기"라는 커다란 방패를 들고 부모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아이와 원수 되지 않고 좀 유쾌한 관계가 유지된 이유 중 가장 으뜸인 것은

역시 "제가 선택한 비굴모드"였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어요.

사춘기는 어찌나 끈질긴지 매해 이것이 진정한 사춘기이구나? 하고 느끼곤 했으니까요.

청소년시절의 감정호르몬이 평소보다 4~50% 더 증가한다고 하니 어찌 질풍노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친정엄마의 무한 사랑을 저도 본받고자 하는 생각으로 사는데요

아이는 늘 상 저의 인내력 테스트를 하네요.

굴복, 비굴, 포기 모드가 다 작동한 뒤 지치면 냉담모드로 들어가는 무한 루틴의 반복입니다.

더 엄격히 말하면 제가 말을 하고 싶지가 않을 때가 되면 냉담모드 작동이에요.

아이에게 실망해서요.

그렇다고 문제가 있거나 특별히 말썽을 피우는 것도 아닌데 ㅠㅠㅠ 왜 이리 자주 실망스러울까요?

자기 삶에 대한 책임감도 없어 보이고 사춘기 때

친구라는 것이 자기 삶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무수히 많은 이론적 상담으로 쌓인 내공이 실제 상황 앞에서 처참히 무너지고 있고

맘 속으로 수만 갈래로 이야기가 막 전개되는데요

중요한 것은 아이랑 눈도 마주치기 싫고, 말도 하기 싫고 천방지축 먹는 것만 찾다가 본인도 눈치가 보이는지 좀 자중모드를 잠시 보여주긴 하더이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갈 때 포기 모드가 저절로 작동됩니다.




20230412_175036.jpg 꽃은 피어야 할 계절이 되어야 피는 것

딸: "엄마, 나 육사 안 갈래 (언제 누가 오라 했냐고요? )

엄: 왜?

딸: 전교 1~3등 해야 간대 (내가 그리 말할 때는 안드로메다 갔다 왔나?)

엄: 갑자기 왜? 늘 육사 가서 얼짱장교가 되겠다고 하더니

딸: "이제 내 나이가 얼만데 좀 현실적이 되어야 할 것 같아"

( 니 나이 16살ㅠㅠ 바위를 갈아 바늘을 만들려는 허황한 꿈을 품어야 할 나이거늘)

엄: 꿈은 크게 가져야지.

딸: 나이가~ (에라이.. 니 나이가 몇 살이라고 )

그 길로 저의 입은 꾹 잠겼습니다. 평소의 유머감작렬과 유치개그는 아예 거두었고요

눈치 보며 얼굴 뾰루지 걱정하고 들이미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지도 않습니다.


사실 수년 안에 우리 사회에 격변할 것이라고 보기에 절대 학벌에 그리 매달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 우리 사회는 점차 기술과 라이선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이들이 주가 될 테니까 말입니다.

아이가 어떤 뚜렷한 것에 재주가 있다면, 특성화고교진학도 염두에 두는데

말 그대로 요리하다가는(떡, 베이커리 모든 종류포함) 지 손가락 벨 것 같고

머리 하다가는 손님 머리 다 태울 것 같고

그나마 운동 쪽으로 상당히 관심이 있다 여겼는데... 오호 통제라~ 이것도 개뻥이었네요.


부족과 결핍이 "동기유발"을 부르는데 큰 아이와는 달리 좀 더 편안하게 모든 일을 거의 애교버전으로 커버하는 삶을 영유하게 한 것은 오직 나의 잘못인 것 같습니다.

심한 자책모드로 상처를 가슴깊이 묻어봅니다.

지나친 학원순례나 자기 지식화 하지 못하는 설명이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것 너무 잘 알기에 학원을 다 끊고 진로탐색시기를 가져볼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봅니다.

그냥 학원 왔다 갔다만 한다는 것 제가 제일 잘 알면서도 또 모든 것이 끝나고 우울한 모드로 들어가네요.

부모들은 다 속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을 포기모드로 갈 수 없기에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내 머릿속에 있는 고민을 먼저 아이키우신 직장 언니들께 까놓고 상담하니

이구동성으로 "다 그럴 때라고, 그러다 만다고"하는 뻔한 "비굴모드로 참기" 모범답안을 내놓으시네요.




아이와의 관계에서 굴복시키지 않고

늘 부모인 내가 비굴모드가 맞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종종, 아니 너무 자주 비굴모드를 넘어서 포기모드로 가고 싶네요.

몸과 마음이 다 지쳐서 그냥 하염없이 걸으러 나갑니다.

저리 열심히 걷고 있는 엄마들은 지금 다들 자녀들 때문에 속에 열불이 나와서 걷고 있는 것일까?

집에서는 비굴모드로 견디다가 나와서 지금 저리 발바닥에너지로 삭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저 혼자 소설을 쓰면서 삭혀봅니다.


놀고 싶다고 하면 놀리자.

하기 싫다면 놓자.

단, 각서를 받자. 이런 허망한 이야기만 주고받다가 못 참는 남편은 열을 내며 한 3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50년 생고생하게 두라고 큰소리치더구먼

밤이 되니 꼬리를 내리고 현금을 몇 장 들고 들어가 "내일 종업식 후 친구들과 즐거운 외식을 하라면서......" 정말 낮의 그 소리지름은 어디로 감추고 역시 비굴모드로 마무리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느라 지문이 닳은 것이 아니라

자식 비유 맞추다가 지문이 닳은 것일지도......

그래서 엄마들이 열받으면 "커서 니 닮은 자식 놔봐라~"하는지도.

자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비굴모드"를 작동시킨 모든 엄마들을 위해

우리끼리 동병상련의 마음을 담아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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