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관리자 할아버지의 반전 과거

by 로린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창고관리자로 일하시던 지미 루니라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처음 회사 창고에서 체구도 마르고, 허리도 꾸부정하게 굽은 할아버지가 앞이 보일랑 말랑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상자를 높이 쌓아 트롤리에 실어 나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먼지가 많아 늘 뿌연 돋보기안경을 쓰고 창고에서 동분서주 걷고 또 걸어 다니시는데, 70대 할아버지가 이런 일을 해도 되나 싶었다. 비가 오나 폭염이 와도 매일 출근해서 일하시는 지미 할아버지가 안쓰러웠던 우리 팀은 할아버지께서 우리 사무실에 들르실 때면 앉아서 쉬시라고 의자도 내어드리고 간식도 드렸다. 자식들도 다 성장해서 손주들을 보신 분이 용돈벌이를 하려고 매일 이렇게 고된 노동을 하신다니 그 연세에 얼마나 많은 용돈이 필요하셔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미 할아버지를 몇 달 동안 지켜본 나는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걱정이었는지 깨달았다. 지미 할아버지께서 일하는 그 자체를 즐기고 계신다는 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그저 하루라도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분이셨다. 본인이 좋아서 하시기에 가족들도 말릴 재간이 없어 보였다.


지미 할아버지와 함께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대뜸 나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셨다. 하하 일 년을 같이 일했는데 그걸 이제야 물으시다니, 우리 팀에 동양인은 나뿐인데, 참 그게 그렇게도 안 궁금하셨나 싶은 생각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나는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지미 할아버지의 눈이 갑자기 초롱초롱 빛났다. '한국! 73년도에 내가 서울에 갔었지. 그때 한국은 겨울이었는데 어찌나 춥던지..' 아직도 할아버지의 몸이 그 겨울을 기억한다는 듯 부르르 떨렸다. 할아버지께서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한국을 다녀가셨다니! 너무 반가운 마음에 할아버지에게 이것저것 여쭈었다. 얼마나 여행을 하셨는지. 그때 한국은 어땠는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지. 계속 질문을 쏟아내는 나 때문에 부담스러우셨던지 머리를 긁적이시면서 허공을 보고 말씀하셨다 '내가 축구를 좀 했어. 그때 한국에 축구경기를 하러 갔는데. 그때 한국의 겨울이 정말 혹독하게 추웠던 기억이나' 할아버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우리 매니저가 옆에서 말했다. '지미, 쑥스러워하지 말아요. 호주 국가대표 축구선수였잖아요'


오 마이 갓! 창고에서 물건을 나르는 지미 할아버지께서 50년 전 하늘을 날아 내가 태어난 한국땅에, 여행객이 아니고 호주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축구경기를 하러 다녀가셨다니! 50년 전 일이라 할아버지는 한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셨지만 '그때.. 한국은 열약했어'라는 할아버지의 한마디가 왠지 그때 그 시절의 한국을 전부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궁금한 것이 더 많았지만 갑자기 전직이 밝혀진 것이 쑥스러우셨는지 할아버지께서 급하게 일어나 나가시는 바람에 많이 여쭙지 못했다. 그러다 몇 달 뒤 우연히 회사 사보에 지미 할아버지의 축구대표 시절 이야기가 실렸고, 나는 할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지미 할아버지는 1945년에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건너가 축구 선수로 지내시다가 1968년에 호주로 이민을 왔다. 호주의 여러 프로 축구팀을 거쳐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1970도부터 1980년대까지 호주국가대팀의 미드필드 축구선수로 활약하셨다.


지미 할아버지가 50년이나 지났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를 또렷이 기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은근히 한국과 호주는 축구로 역사가 깊은 라이벌이다. 지미 할아버지가 국가대표를 하시던 그 시절, 두 나라의 축구 라이벌 역사가 시작되었다. 1973년 10월, 호주 시드니에서 1974 년 서독 월드컵 선발을 위한 호주팀과 대한민국팀의 예선경기가 있었다. 얼마나 치열했던지, 두 팀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0-0 무승부로 끝났다. 이후, 승부를 보기 위해 11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대한민국 대 호주팀의 경기가 이뤄졌다. (이때 지미 할아버지가 한국에 방문했던 것). 한국이 선골을 2골을 넣어 우승을 코앞에 두고 있던 중에 호주의 연이은 역전 골로 2-2 다시 무승부가 돼버렸다. 1973년 당시 FIFA의 결정에 따라 추가 경기를 치러야 했다. 결국, 대한민국팀과 호주팀은 홍콩에서 세 번째 경기를 하게 된다. 두 국가 모두 이번에는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 했다. 다시 두 국가의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다. 바로 이 경기에서 지미 할아버지의 탁월한 어시스트로 호주는 역사에 길이 남을 골을 넣게 되었고, 1-0으로 호주가 우승을 함으로써 호주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번외로) 할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하셨지만, 이 시절 대한민국 대표선수로는 차범근 선수가 있었다. 우리의 축구 영웅 차범선수와 함께 축구경기를 뛰었던 호주팀 대표 축구선수를 우리 회사 창고에서 만날 줄이야!


지미 루니 할아버지의 현역 선수시절. 사진 출처: footballaustralia.com.au, socceroos.com.au - The sydney Morning Herold


그동안 월드컵이 있을 때마다 축구에 관심 있는 호주 직원들은 나에게 농담으로 우리가 이기나 한국이 이기나 보자고 내기를 걸었었다. 호주 대 한국 축구경기에 호주가 골이라도 넣으면 '봤어? 호주가 골 넣었어'라고 나에게 장난스러운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땐 그저 내가 한국사람이어서 장난 거는 거구나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 호주와 한국이 오래전부터 축구 라이벌 관계였다는 것을 지미 할아버지 덕분에 알게 됐다. 물론 지금은 호주보다 한국이 축구강국이 됐지만, 옛날 지미 할아버지 현역 시절 호주의 축구는 아시아권에서 무너뜨릴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대, 넓은 잔디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뛰며 영양가 높은 음식을 풍족히 먹고살았던 호주 선수들은 체격부터 한국선수들과 달랐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지미할아버지는 결국 은퇴를 하셨다. 의사로부터 앞으로는 뛰거나 오랜 시간 걷거나 관절을 많이 사용하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진단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축구사랑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요즘 Walking football라는 스포츠를 즐겨하신다고 한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위한 '걸어 다니는 축구'라는 스포츠인데 강한 달리기와 태클을 절대 하면 안 되는 룰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역시!라는 탄성이 나왔다. 할아버지에게 탁월한 스포츠가 아닌가. 정말 할아버지의 인생은 축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지미 할아버지와 함께 근무했던 시간은 4년밖에 되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봤던 할아버지의 일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태도를 보고 많이 배웠다. 어떤 직업에 있던,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도 다시금 되새겼다. '내가 이런 사람이야' '내가 이렇게 잘 나가'라는 걸 보여주기에 위해 무리한 쇼핑을 하고 빛을 내서 해외여행을 하는 요즘 시대에, 국가대표 축구선수라는 화려한 과거를 덤덤히 기억에 묻어두고, 겸손히 현재를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정말 존경스럽다. 과거에 내가 누구였 건, 무엇을 이뤘건 그것은 지나간 과거다. 오늘.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하며 이루고 살 것인지를 고민하며 살아가야겠다.



The past is history. I only care about the present and the future." – Cristiano Ronaldo

과거는 역사일 뿐이다. 나는 오직 현재와 미래에만 집중한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1973년 11월 홍콩에서 치러진 축구경기에서 지미 할아버지의 어시스트 활약이 보고 싶으시다면 링크를 열어보세요 (0:14부터 보시면 됩니다)

어시스트: 지미 루니

슛터: 지미 맥케이

https://www.youtube.com/watch?v=UVkDxE3L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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