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Payroll로 입사했던 회사에는 워킹맘들이 꽤 있었다. 회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회사에 나오는 것에 대해 관대했고 그런 환경 덕분에 워킹맘들이 일하기에 좋았다. 방학기간에 종종 아이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출근해서 옆에 두고 일하다 퇴근을 같이했다. 아무래도 말이 잘 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애 엄마들끼리 가까워졌다. 그중에서도 나는 우리 딸과 같은 나이 또래에 아들을 키우는 테리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테리는 회사의 한 지점의 지점장으로 책임감도 넘치고 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라 자주 야근을 했다. 싱글맘이었던 테리는 야근을 할 때마다 아들을 봐줄 사람이 없으면 아들을 데리고 회사에 왔다. 그야말로 커리어와 아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대단한 커리어 우먼이자, 멋진 엄마였다.
한 번은 노동청의 정책으로 최저임금인상이 있었고, 대부분의 직원들의 시급을 Payroll 시스템에 업데이트해야 했다. 주중에는 각자 맡은 업무도 많고, 시스템이 업데이트가 되는 동안 업무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으니 주말에 하는 게 좋겠다는 윗분들의 의견이 있었고, 주말 시급을 줄 테니 지원하고 싶은 사람은 지원하라는 공고가 올라왔다. 주말 시급은 내 시급의 1.5배였다. 악바리 한국엄마는 이런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지. 남편과 상의(통보?) 후 곧바로 지원했다. 주말에 출근하며 회사를 들어서자마자 나는 웃음이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주말 업무를 하기 위해 출근한 사람 모두 아이 엄마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쉬는 주말도 무르고 자식들 위해 돈 벌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은 호주엄마든 한국엄마든 다 같았다. 물론, 테리가 주말 업무를 지원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녀가 밤, 새벽, 주말도 마다 하지 않는 워커홀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업무에 집중을 하다가도 짬짬이 커피 브레이크 시간에 수다를 나눴다. 아슬아슬한 결혼생활이야기, 좌충우돌 육아하는 이야기. 업무를 하는 날 같지 않았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난다는 고등학교 여자아이들이 수학여행 가서 밤새 이야기 나누는 것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내가 테리에 대해 잘 알게 된 것도 이 날부터였다. 테리는 남편과 늦은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부부의 간절함이 통한건지 기적처럼 딸아이를 임신했고, 노산이었지만 아이는 임신기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자랐다고 했다. 부부가 손꼽아 기다리던 출산날. 어쩐 일인지 테리는 딸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아이를 사산한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자라고 있었고 태동도 느꼈었는데. 간절히 기다려온 아기는 엄마 눈 한번 마주쳐보지 못하고 떠났다. 테리는 딸아이를 보내주기 전 꼭 한번 안아봤던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평생 마음에 남을 딸아이를 한 순간도 잊지 않으려고 테리는 자신의 팔에 딸아이의 이름과 생일을 타투로 새겼다. 아이를 잃은 부부는 함께 있으면 계속 생각나는 슬픔과 고통에 결국 이혼을 하게 됐다. 그 이후, 테리는 이것저것 배우며 아주 바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통기타를 배우기 위해 개인교습을 받던 중, 통기타 선생님과 테리사이에 한밤의 이벤트가 생겼고, 지금의 아들을 가지게 되었다. 하룻밤의 이벤트로 생긴 아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통기타 선생님은 테리와 더 이상의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럼에도 소중한 아기를 또 잃고 싶지 않았던 테리는 홀로 낳아 키우기로 결심했다. 테리의 전 남편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테리가 안쓰러워 이런저런 도움을 주다가 다시 가까워졌고, 테리의 뒷집으로 이사 와서 종종 아이를 봐주고 있다고 했다. 테리의 이런저런 사정을 모두 알게 된 후부터 테리와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고 자주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하며 친하게 지냈다.
테리는 일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아주 열정적이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주위사람들을 항상 즐겁게 해주는 비타민 같은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워크숍으로 뉴질랜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전 직원을 위해 깔맞춤 아이템을 사 와서 덕분에 직원들 모두 기억에 남을 단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늘 회사 직원들의 생일을 기억하고 챙겨주는 사람도 테리였다. 내가 둘째를 임신해서 출산 휴가를 앞두고 있을 때, 테리가 앞장서서 동료들과 돈을 모아 우리 아이가 쓸 아이 침대를 사줬다. 테리는 아들이 어릴 때 쓰던 육아용품들을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운전해서 실어다 줬다. 테리와 다른 워킹맘들이 너도 나도 출근길에 바리바리 싼 아이 옷과 책들을 한 보따리씩 들고 왔다. 우리 둘째가 태어나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했다. 아기를 출산하고 퇴원해서 집에 돌아온 날, 우리 집으로 큰 꽃다발과 편지가 배달됐다. 우리 아기의 탄생을 축해주는 회사 동료들의 마음이었다. 서양사람들이 차가운 이기주의, 개인주의라고 누가 그랬던가 나는 테리와 회사 동료들로부터 따듯한 '정(情)'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멀리 이사를 하면서 이직을 했고 그 이후, 테리도 이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SNS로 테리의 소식을 간간히 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테리가 활짝 웃으며 운동을 하는 사진과 함께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항암을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SNS에 올렸다. 그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역시 테리답다 싶었다. 이후, 회복이 되어서 아들 와 함께 산책도 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SNS에 올라온 걸 보면서 밝고 열정 가득한 테리는 암도 이겨내는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다시 암이 재발하는 바람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삶을 사랑하던 테리는 처음 암진단을 받은 후로부터 2년을 꼭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유독 사람을 좋아하고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해서 'T-bird' (테리의 T를 따서) 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테리는 정말 안타깝게도 코로나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가족, 친구, 심지어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과 한마디 나눠 보지 못하고 병실에서 외롭게 하늘나라로 날아갔다. 우리 딸과 동갑인 그녀의 아들이 유일한 가족,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은 딱 10년. 그뿐이었다. 회사 워크숍 중에 아이가 보고 싶다고 밤마다 호텔 방 안에서 나랑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었던 테리는 이제 영영 아들을 볼 수 없게 됐다. 그런 테리를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늘 주위사람을 위하고 사랑해 주던 천사 테리를 너무 일찍 데려간 하늘이 정말 원망스럽다.
충격적이었던 테리의 부고는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 때문에 1살이 되기도 전부터 어린이집을 다닌 우리 아이들. 결혼 생활 내내 맞벌이한다고 잘 챙겨주지 못한 남편.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살면 결국에는 우리 가족들에게 다 좋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게 정말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건강하고 활기가 넘쳤던 테리가 그렇게 허망하게 가고 나니,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지 않으라는 법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테리가 마지막으로 보낸 크리스마스이브.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2달 전. 코로나로 아무도 만날 수 없었던 그녀는 병상에 누워 주위 사람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메시지 SNS에 올렸다.
그녀의 메시지의 마지막 문구는
"Be grateful for the time you have with loved ones not take it for granted"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감사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세요.
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가슴깊이 새기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지만 어떤 때는 그중 어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아 무너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테리를 기억한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일에 매달려 살던 테리의 마지막 메시지에는 '일'에 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내지 못한 소중한 시간들에 대한 그녀의 후회는 깊었다.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서 일을 하고 돈을 번다. 하지만 진짜 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내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오늘 지금 이 순간, 아이들과 남편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련다.
If the world was ending, I'd wanna be next to you.
If the party was over and our time on Earth was through I 'd wanna hold you just for a while and die with a smile.
- Bruno Mars <Die with a smile> lyrics
세상이 끝나는 순간, 난 당신 곁에 있고 싶어요.
파티가 끝나고 세상의 시간이 다하면 나는 당신을 꼭 안고 미소 지으며 떠날 거예요.
- 브루노 마스 <Die with a smile> 노래가사
I've learned that making a 'living' is not the same thing as making a 'life'
나는 먹고사는 것과 진짜 삶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 마야 안젤로 <미국의 시인, 민권운동가 (1928-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