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별들 중 하나

by 로린

매일 똑같은 업무에, 똑같은 말을 앵무새 처럼 하는 무한 반복 다시 보기 같은 날들. 오늘도 하루를 회사에서 다 보냈는데, 도대체 뭘 했는지, 나라는 사람이 오늘 존재는 했었는지 헷갈릴 때. 나는 내가 그 어느 누구도 내가 밤새 하늘에 떠있었다는 것도 모를 이름 없는 수많은 별들 중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눈에 띄게 반짝거리는 별자리 별들 사이에서, 내 나름 반짝여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 빛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


회사에서 화려한 빛을 내는 스타는 세일즈나 제품 개발팀처럼 회사에 눈에 보이는 수익을 가져다주는 주력 부서들이다. 호주의 회사문화가 대단히 개방적이고 유연하다고는 하나, 눈에 보이는 수익에 기여하는 분량이 많은 주력 부서의 직원들이 회사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주력 부서의 직원들에게는 수상 이벤트, 인센티브, 승진의 기회들이 다른 부서들 직원들에 비해 많이 주어진다.


Payroll (급여관리자)은 HR (인사과), 회계팀과 IT팀과 같이 회사가 수월히 운영되기 위해 지원하는 부서다. 그런 부서를 호주에선 Shared Service라고 부른다. 회사 전체에 두루 공유되는 지원 부서라는 뜻이다. 지원부서들은 회사의 수익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서 사실상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다. 열정 높은 새내기 시절엔 왜 주력 부서와 지원 부서에게 공평한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지 씩씩대며 불만을 품기도 했었다. 하지만 회사 경력이 쌓여갈수록 바뀌지 않는 건 조용히 수긍하는 것을 익혔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을 해보니 책상 위에 내 이름이 박힌 예쁜 초대장이 놓여있었다. 회사에서 보낸 초대장이었다. 나는 믿기지 않아서 초대장 위의 내 이름을 읽어보고 또 읽어봤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우리 팀원들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같은 초대장을 들고 서 있었다.


회사 전체를 위한 이벤트 행사 인가 싶었지만, Payroll, HR, 회계, IT팀과 고객관리팀 즉, 지원 부서 직원들만 초대장을 받았다고 했다. 회사에서 지원부서만을 위한 행사를 여는 것이라고 했다. 놀라웠다. 지원부서들만을 위한 이벤트를 여는 회사는 그동안 본 적이 없었다. 같은 회사를 15년동안 다닌 선배도 지금까지 Payroll팀이 초대된 이벤트는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초대장이 잘못 배달된 건 아닐까?'

'우리를 왜?'

'큰 구조조정이 있기 전 최후의 만찬 같은 건가?'


각자의 궁금증과 설렘 속에 이런저런 루머들도 흘러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이벤트 날이 왔다. 아침부터 큰 관광버스 4대가 회사주차장에 들어왔고, 정말 지원부서 직원들만 태우고 출발했다. 오랜만에 모니터 속 배경화면이 아닌 진짜 파란 하늘과 초록 들판을 보며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소풍 가는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도착하고 보니, 이벤트 행사장은 멜버른 외곽의 유명한 와이너리 레스토랑이었다. 모던하고 근사한 레스토랑 건물 뒤로 끝이 보이지 않는 포도밭이 펼쳐져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맑은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아이러니하게도 호주에 20년째 살고 있지만 이렇게 탁 트인 교외에 나올 때면 꼭 '아 맞아. 내가 호주에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넓은 연회장안에는 둥글고 큰 테이블 위에 지정된 자리에 초대된 직원들의 이름이 하나씩 놓여있었다. 내 이름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이런 근사한 레스토랑에 내 이름으로 지정된 자리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벤트가 시작되고 테이블 가운데에는 알 수 없는 알록달록 퍼즐조각들이 놓였다. 행사의 첫 시작은 퍼즐 조각을 가장 빨리 맞추기 시합이었다. 손가락 한마디 밖에 안 되는 작은 퍼즐 조각들을 가지고 다 큰 어른들이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걷어붙이고 시합에 진지하게 임했다. 노안이 와서 퍼즐을 멀리 놓고 보는 사람, 돋보기를 꺼내는 사람, 손이 너무 커서 작고 작은 퍼즐을 손에 잡을 수도 없는 사람들까지. 그 광경을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모든 테이블의 퍼즐조각들이 완성되자 이벤트 진행팀이 퍼즐 조각을 조심히 옮겨 한 곳으로 모았다. 각각의 퍼즐 조각을 한 곳에 모아보니 여러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하나의 큰 물고기가 된 모습의 퍼즐이 완성됐다.

완성된 큰 퍼즐을 가지고 임직원분이 앞으로 나와 말씀하셨다. '어떤 물고기도 몸통만 가지고는 수영할 수 없어요. 지느러미가 있어야 수영을 하고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Shared Service 분들이 없으면 우리 회사가 운영될 수 없는 것처럼요. 우리 회사가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여러분의 노고가 컸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늘 당신의 노고를 늘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 회사가 앞으로도 계속 잘 헤엄쳐 나아갈 수 있게 많은 지원 부탁 드립니다'


감동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걸어온 지원부서 지원들 모두의 시간과 노력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나 스스로를 아무도 모르는 별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회사에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그 순간, 내가 반짝하고 빛이 난 것 같았다.


임직원 분의 스피치가 끝난 뒤, 식사가 나왔다. 직접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도 맛보고 맛있는 3 코스 음식도 먹고, 좋은 사람들과 많은 얘기도 나눴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였다. 혼자 근사한 곳에서 외식을 한다는 건 꿈도 못 꾸는 애 둘 엄마에게 더욱 그랬다.

행사를 마무리하며, 이벤트 진행자들은 예쁜 편지 봉투를 하나씩 나눠줬다. 그 안에는 $200불 상당의 기프트카드가 들어있었다. 지원부서는 보너스, 인센티브 등 월급 외에 수당이 거의 없는 부서다. 10년 넘게 일을 하면서 급여 외에 이런 선물을 받아본 것도 손에 꼽는다. 그렇기 때문에 금액에 상관없이 기프트카드 그 자체로 감동을 받았다.


해가 질 무렵 버스가 우리를 다시 현실로 아니 회사로 데려다주었다. 하루동안 좋은 것 보고 맛있는 것 먹으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선물도 받은 정말 꿈같은 하루였다.


지금도 가끔 매일 똑같은 하루, 별로 알아주지도 하찮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내가 반짝 빛났던 그날을 기억해 본다. 그때의 물고기 퍼즐을 떠올리면서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되새긴다. 아무리 희미한 빛을 내는 별이라도, 아무도 내 빛을 알아보지 못해도, 열심히 내 의미 있는 별을 밝혀 보려고 한다. 아무도 모른다. 작은 반짝임이 모여 어느 날 내가 번쩍 할지도.





"Even the smallest star shines in the darkness. Your effort, however small they may seem, can make all the difference. Your light matters" - Unknown


세상에서 가장 작은 별도 어둠 속에서 빛을 냅니다. 비록 당신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도, 그것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당신의 빛은 소중합니다.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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