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Error

사람의 실수

by 로린

나는 정확하고 완벽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을 요즘은 MBTI의 T성향의 사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T성향의 사람은 뭐든 이성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차갑고 인정 없다고도 하지만 나는 내가 T성향의 사람이라 좋다. T성향의 사람이기 때문에 정확함과 세밀함을 요하는 Payroll (급여관리자)라는 찰떡같은 직업을 만났고, 무엇보다 내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보다는 만족감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처음 Payroll업무를 시작했을 시절엔 직원들이 직접 수기로 그날그날 작성한 근무기록표 종이를 보고 급여를 계산했다. 철도, 도로 건설을 하는 분들이 현장에서 작성한 근무기록표는 상태가 좋지 못했다. 찢어지고, 젖고, 물들고, 흙발자국이 가득하고, 하도 구겨져서 화장지처럼 너덜너덜하고, 금방 굴러갈 가기라도 할 듯 공처럼 구겨져 버린 근무기록표도 있었다. 그분들도 마땅한 책상과 의자도 없이 현장에서 밤낮으로 고된 근무 후에 근무기록표를 작성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이해가 됐다. 그래서 열심히 찢어진 종이를 테이프로 붙이고, 발자국 가득한 근무기록표를 손으로 일일이 펴가며 한 자 한 자 읽어냈다. 그분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정확한 급여를 계산해 드리려고 노력했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근무기록표의 숫자들을 읽어내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았다. 큰 난관이었다. 숫자 하나를 어떻게 읽냐에 따라 수십 달러에서 수백 달러가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의 오차를 줄여보기 위해 우리 팀은 항상 Cross check(교차체크)을 했다. "Another pair of eyes always helps" 다른 두 눈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 라는 말처럼 역시 혼자서 할 때보다는 여럿이 함께 바꿔가며 체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어떤 때는 내가 혼자서 아무리 봐도 읽을 수 없는 비밀문서의 코드 같던 숫자가 두세 명의 팀원들과 함께 보면 짠 하고 읽히는 마법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중체크, 교차체크를 해도 사람의 눈으로 일일이 읽어 계산하면서 실수가 없을 수 없었다. 수많은 체크를 하고 완벽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내 실수를 마주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절망이었다. 동료들이 내 실수를 알게 되는 것이 창피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자책이 쌓여 밤에 잠을 이루기도 쉽지 않았다. 실수를 한 다음날은 마치 내 얼굴에 실. 수.라고 크게 적힌 것만 같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서야 겨우 사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철없는 내 기분이 태도로 나타났던 걸까. 내가 실수하며 괴로워하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알아채고는 "We're human. It's just a human error" 우리는 사람이야. 이건 그냥 사람의 실수인거지.라고 말해줬다. 그땐 동료들이 그저 나를 위로해 주려고 던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주에서 계속 일을 하면서 알게 됐다. 그건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그 말 그 자체로 호주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호주사람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든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수용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간다. 호주회사에서는 직원의 실수보다 그 직원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고 처리해해 내는가를 더 주목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호주의 여러 회사를 다녔지만 직원의 실수를 가지고 비난을 한다거나 호통을 치는 매니저는 본 적이 없다. 한 번은 내가 한 실수를 혼자 마무리하지 못해 쩔쩔매다가 매니저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수습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매니저가 나에게 말했다 'It's okay. Sometimes I make mistakes too. We are human. and I am here to do those things' 괜찮아. 나도 가끔 실수하는걸. 우린 다 사람이야 그리고 그런 수습을 하려고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거야.

실수에 너그러운 문화라고 해서 설렁설렁 일하며 실수를 남발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여유롭고 쉽게 수용하는 호주사람들도 자신의 직업에 대한 투철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 특히 Payroll은 작은 실수나 오차를 내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열심히 일한 직원의 소중한 시간과 땀의 값을 허투루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사람은 실수를 한다.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고 실수를 한다.
이 사실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인 후부터 나는 서서히 나의 실수를 마주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성인이 되는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왜 실수를 마주하는 것이 힘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릴 적, 내가 어떤 실수를 했을 때 내가 처음으로 듣는 말은 '왜'였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왜 그랬어" "왜 그래" "왜 그러는 거야 왜"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이미 일어난 실수에 대해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실수를 인정하고 수습하기를 배우기보다는 실수가 일어난 과거를 붙잡고 후회만 하다 과거를 바꿀 수 없는 것에 무력함을 느끼고 스스로를 못난 사람이라고 단정하게 된다.

한국에서 학교, 학원을 다니면서 수많은 영어단어를 외웠어도 'Human error'라는 말은 배운 적이 없었다. 'Human' 사람, 'Error'실수/오류를 각각 따로 배우기도 했지만 이것이 한 단어로 합쳐진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몰랐다. 한국사회에서는 사람이 아주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 실수는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람과 실수라는 단어가 함께 있는 것을 보기 어려웠던 건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완벽주의자인 나는 이제 'Human error'라는 말이 좋아졌다. 잊고 지내다 한 번씩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실수가 그리 싫지 않아 졌다. 홍진경이라는 방송인이 어느 프로에 나와서 그런 말을 했다. '진정한 겸손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굽신거리는 것이 아닌, 나도 실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맞는 말이다. 겸손한 마음 없이도 남 굽신거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도 실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수는 수천수백만 년 전 과거의 사람도 했고, 수십 년 뒤 미래의 사람도 할 것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다. 실수가 없는 완벽을 바라며 거만하게 나를 괴롭히기보다는, 내가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겸손한 완벽주의자가 되고 싶다.


"It is impossible to live without failing at something, unless you live so cautiously that you might as well not have lived at all." — J.K. Rowling


실패하지 않으면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무 신중하게 살아서 살지 않은 것과 다름없으면 몰라도 - J.K 롤링 <해리포터 시리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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