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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린 Sep 11. 2024

아이가 스스로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깨닫다

인종이 다르다는 걸 아이가 알게 된 날

내가 살고 있는 호주 멜버른에서는

유치원을 3-4살까지 하고 4-5살이 되면 Prep이라는 학년으로 학교를 시작하게 된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는 호주사람들이 대다수인 동네였기 때문에 아이가 다닌 어린이집, 유치원에는 동양아이, 한국아이가 우리 아이 단 하나뿐이었다.



한국친구들을 만들어주기 위해 카페도 가입하고 한국엄마들을 만나 교류도 해봤지만 을 하느라 시간을 많이 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학교를 들어갔다.

학교에서도 같은 해에 동급생 중 찐 한국인은 우리 아이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런 환경이었기 때문에 아이가 특별히 힘들어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나에게 물었다.


"Mum am I different to others?"

엄마,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라?


"What do you mean?"

무슨 말이야


"My friends told me my hair is black and their hair is all brown. They told me to not to sing Australian anthem together with them"

애들이 내 머리는 까만색이래. 친구들은 다 갈색인데. 나보고 호주 애국가도 같이 부르지 말라고 했어.



충격이었다.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너는 한국인이야. 호주인이야. 이런 말을 딱히 하지 않았다.

정체성은 알아서 찾아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동안 유치원을 다니면서 거울도 보고 사진도 찍었을 텐데. 자기만 다른 인종이라는 것을 당연히 인지할 것으로 생각했다.



아이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듯했다.


자기가 친구들이랑 다르다는 것을 5살이 되어서야 알게 된 거다.  

1살 때부터 어울렸던 어린이집 친구들과 줄곧 유치원까지 다녔고, 매일 보던 친구들만 보며 자라서 그런가..

스스로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학교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자기가 인종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나는 당황한 모습을 숨기며 차분히 설명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각이 다르고

너만 특별히 다른 건 아니다.


Everybody's different.

You're not the only one.


Miss P 선생님은 그리스 인이시고,

너의 친구 알라나는 터키인이고,

엄마친구 폴은  콜롬비아인이야.


너는 엄마, 아빠를 닮아 한국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호주인이고

엄마를 따라 한국인이기도 하며

아빠를 따라 뉴질랜드인이기도 하단다. 

모두모두 달라. Everybody's different!


아이는 의아하다는 듯 한참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모든 사람들은 다르다는 말이 맞다면서

Everybody's different를 반복했다.



다음날,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주며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어릴 적에는 모르고 다 같이 놀던 친구들도

4-5살쯤 되면 눈에 보이는 생김새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나쁜 의도는 없지만 어떤 말이 올바른지 모르기 때문에

적나라한 표현을 할 때도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던

아이들과 면담을 하고 나에게 설명해 주셨다.  

결론은 아이들이 우리 아이에게 자신들과 다른 생김새라는 것을 지적했지만 애국가를 부르지 말라고 한건 다 같이 한 곳에 서서 하기엔 너무 인원이 많아서 했던 이야기 라는것. 반은 오해였던 것.



그 이후로도 아이는 친구들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 지냈다. 우리 아이도 그 아이들도 배우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길.




*실제로 동급학교 엄마들 중

호주 아이들이 적나라한 말에 놀란 엄마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 엄마들 애들이 "You are fat!" 뚱뚱해요!라고 해서 기겁을 했다고 하고,

"You are short!" 키가 작군요!라는 말을 들은 엄마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웃어넘겼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필터 없이 하는 아이들의 말은 당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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