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축사
한강 작가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노벨 문학상 소식은 스웨덴과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산의 산자락에서도 들리더군요.
그리고 당신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에 저도 조금이나마 이바지했다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관찰당하는 주인공, 바로 인혜이니까요.
저는 인간의 몸에서 벗어나 인간일 적의 저와 가장 거리가 멀고 닮고 싶었던,
지리산의 소나무가 되었습니다.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나의 전 남편의 입장에서 쓴 소설의 첫 문장처럼,
저는 살아 있을 때 눈에 잘 띄지 않는 여자였습니다.
남편과도 진정한 사랑으로 만난 관계가 아니었고,
제가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았다면 그저 평범하게 살아갔을 지도 모릅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로 살다 채식주의자가 되고,
정신병 판정을 받아 말라가던 미친 여자를 특별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숨을 불어넣은 사람이 바로 당신이니까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저 미친 여자, 이혼 당해도 싼 여자의
상처받은 마음과 아픈 현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채식주의자에게 고기를 강요하는 아버지,
개고기를 먹기 전에 개를 오토바이에 끌고 갔던 아버지,
그 시절 폭력이라 부르지 못했던 것들은
당신은 따뜻하고도 명확한 시선으로 폭력이라 정의했습니다.
이 사회에서 "그 시절은 그랬지.”라 치부되던 것들은
저와 저의 언니 안에 상처로 고여 있었습니다.
그 상처들이 세상에 각광은 받은 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세계는 <채식주의자>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의 비극으로 나아갔습니다.
경제 급성장과 민주화 운동의 상처를 애써 숨기고자 하는 사회에서
당신은 그 상처를 명확하고도 우아하게 꺼냈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해서 사회에 소외되고 감추어졌던 이들의 이야기가
당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통해 각광을 받게 되어서 기쁩니다.
물론 제가 인간으로 살아 있을 때에 비해 세상이 그리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험한 소식이 가득찬 뉴스에 좌절하고 있겠지요.
저 역시 언젠가 이 지리산에서 나무로서 수명이 다하거나 어떤 인간에게 베어질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 높은 지리산에서 제가 살던 인간 세상을 보며,
그때보다는 조금 더 세상이 나아지기를 빌겠습니다.
당신의 노벨 문학상 소식에 마을 잔치를 열려던 아버지에게
“세상에 큰 전쟁이 벌어지는데 어떻게 마을 잔치를 열 수 있느냐.”고 말했던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세상에 여전히 희망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세상에서 여전히 인간으로 사는 저의 언니와 조카에게 더 밝은 미래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꿈꾸었던 당신이 언제나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