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대하여
여름은 잔인한 계절이다.
지구온난화로 더 잔인해지는 계절이다. 내가 머물렀던 2016년만 하더라도 아름답던 캘리포니아가, 지금은 산불로 인해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다. 모두들 휴대용 선풍기를 하나씩 들고 다니는 한국도 다르지 않다. 얼음이 녹는 남극이든 열사병 사망자가 발생하는 유럽이든 여름의 잔인함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역은 지구에 더 이상 없다.
11시쯤에 핸드폰으로 폭염긴급재난문자가 온다. 국민안전처가 다른 대책 없이 쓸데없는 재난문자만 보낸다고 짜증을 내지만, 이내 '나에게만' 쓸모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동아리방에 글 쓰는 나는 폭염재난문자가 필요 없다. 그러나 폭염에도 자신의 농장에 나온 농부는 문자를 보고 잠시 그늘에서 쉴 것이다. 에어컨 없는 독방에서 홀로 누워있던 할머니는 문자를 보고 아픈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주민센터로 갈 것이다.
여름은 모든 곳에서 잔인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잔인하지는 않다.
여름은 아픈 사람에게, 고독한 사람에게 더 잔인하다.
1999년, 시카고 시장은 폭염에 대처하기 위해 도시에 34곳의 쿨링센터를 열고 노인과 교외 거주민들의 상황을 주기적으로 확인했다. 그렇게 시카고의 폭염 사망자는 1995년 700명에서 1999년 110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2018년, 대한민국에서는 오늘까지 27명이 폭염으로 사망했다.
이곳에서는 누가 잔인한 여름에 책임을 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