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 1화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 명상을 한다. “눈을 감고 강물을 상상하세요.” 눈앞에 강이 펼쳐진다. 넓고 푸른 강. 한강이다. 나는 강둑에 앉아 있다. 그런데 저만치 개 한 마리가 땅바닥에 코를 박은 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동동이다. “동동!” 동동은 내 쪽으로 오긴 해도 나에게 잡히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유지한다. 자기 볼 일이 바빠 내가 안고 쓰다듬는 것이 귀찮은 것이다. 동동은 나를 지나쳐 또 저만치서 돌아다닌다. 나는 그렇게 동동과 강둑에 있는 게 좋아서 그날의 명상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2004년 엄마가 강아지 한 마리를 가방에 담아 가지고 왔다. 엄마가 다니는 사회교육원의 교수님 댁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넓은 마당에 강아지들이 있는 걸 그 댁에 놀러 간 학생이 한 마리를 얻어다가는 도자기실에 두고 집에 허락받는다고 가서는 이틀을 안 와 봤단다. 이틀째 되는 날 아침 엄마가 도자기실에 들어가니 강아지 한 마리가 혼자 흙바닥에서 뛰어다니는데 하도 예뻐서 자기가 데려간다고 하고는 집에 데려온 거라고 했다. 그 강아지가 동동이다. 동동이라는 이름은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동동의 여름방학>에서 따온 것이다. 그즈음 내 방 책꽂이에 그 영화의 비디오테이프가 제목이 잘 보이게 꽂혀 있었다.
우리 집에 오던 날 오후에 동동을 데리고 나갔다. 동동은 길거리에 처음 나와 보는 것 같았다. 골목에 내려놓았더니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언제 봤다고 나를 놓칠세라 그 짧은 다리로 죽기 살기로 따라 오는데, 어찌 겁이 많은지 대문 앞에 놓인 쓰레기통을 보고는 흠칫 놀라 뒷걸음치고 버려진 박스를 봐도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때마다 나는 그것들을 발로 걷어차 그것들이 무서운 게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갔다. 운동장 한복판에 동동을 내려놓고 내가 앞장서 뛰니까 동동이 내 발뒤꿈치를 따라 죽기 살기로 뛰는데 꼭 공이 구르는 것 같았다. 동동이 발이 안 보이게 뛰는 궤적을 따라 모래 먼지가 뽀얗게 피어났다. 그게 동동과의 첫 산책이다.
동동은 갈색의 긴 털이 복슬복슬한데 접힌 귀 끝과 뾰족한 입 주변만 색이 까만 게 꼭 고슴도치 같았다. 동동이 커나가는 동안 동동이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클지가 식구들의 큰 관심사였다. 순종견이라면 근접한 예측이 가능할 텐데 동동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똥개라 짐작이 어려웠다. 동동의 엄마에게 관심이 모아졌다. 엄마 말에 따르면 동동의 엄마는 몸집이 작고 예쁘게 생겼으며 영리하다고 했다. 특히 영리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개 주인들은 하나 같이 자기 개를 영리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거의 믿지 않는다. 어떤 영리한 짓을 하는지 물어보면 자랑스런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걸 듣게 되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집을 찾아온다, 이름을 부르면 온다, 낯선 사람을 보면 짖는다, 똥오줌을 가린다, 똥오줌만 못 가린다. 그런데 동동의 엄마가 영리하다는 말만은 의심치 않고 믿었다. 동동이 영리한 건 제 엄마를 닮아서일 테니까.
동동은 어려서부터 그렇게 영리할 수가 없었다. 동물을 집에 들일 때 똥오줌을 못 가릴까봐 제일 걱정인데, 동동은 채 몇 번을 안 가르쳐서 똥오줌을 가렸다. 또 한 번 간 곳을 정확하게 기억해서 두 번째 갈 때는 자기가 앞장을 섰고, 낯선 사람을 경계해서 절대 아무나 따라 다니는 법이 없었다. 부주의한 탓에 길에서 여러 번 동동을 잃어버렸지만, 나는 사고가 난다면 모를까 동동이 길을 잃거나 낯선 사람을 따라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고, 과연 동동은 매번 집을 찾아왔다.
그뿐 아니다. 동동은 보행 규칙을 사람 이상으로 잘 지켰다. 목줄을 매지 않아도 차도로 뛰어드는 적 없이 인도로 걸었고 신호등에서는 멈춰 섰다가 파란불이 켜지면 건넜다. 파란 불이 켜지고 동동이 길을 건너면 으레 ‘개가 신호등을 볼 줄 아나 보다’는 감탄 섞인 말들이 들려왔는데, 나는 파란불이 바뀌기 전부터 곧 듣게 될 칭찬에 미리부터 흐뭇했다. 동동은 슈퍼 앞에 세워놓으면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고, 식당에 가면 테이블 밑에 엎드려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가는 곳마다 동동을 칭찬하는 말을 듣게 됐음은 물론이다.
동동은 성격도 좋다. 밝고 편안하고 점잖다. 성격이 나쁜 나는 언제나 동동을 보며 그 절반이라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동동은 또 말을 잘 듣는데, 그렇게까지 말을 잘 들을 수도 있다는 것에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릴 적 나는 그렇게 하려다가도 엄마가 하라고 하면 하기가 싫어져서 안 한다고 고집을 부리느라 매일이 전쟁이었고, 지금도 별 다르지 않다. 그런데 동동은 한번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했다. 도대체가 큰 소리 낼 일이라곤 없었고 키우는 데 힘이 하나도 안 들었다.
동동은 잘 생긴 개로 자랐다. 허스키처럼 눈썹 자리가 하얗게 툭 튀어나와 영리하게 보인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보는 사람마다 귀엽다, 예쁘다, 잘 생겼다고 난리였다. 종자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똥개라고 대답하면 다들 종자 있는 개처럼 보인다면서 놀랐다. 동동은 확실히 귀티가 났다. 여느 똥개들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가끔 길에서 동동만한 중간 크기의 똥개들을 보고는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그 개들의 생김새며 크기, 털의 빛깔이 동동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마치 똥개라는 종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잠깐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곧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큰 틀이 같다 해도 약간의 차이로 윤종신이 될 수도 정우성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약간의 차이로 인해 다른 똥개들과 동동 사이엔 적지 않은 미모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영리하고 잘 생긴 개를 키우는 건 나의 오랜 꿈이다. 동동 전에 키웠던 뽀삐의 신경질적 성격에 시달린 뒤엔 거기에 좋은 성격에 대한 바람이 더해졌다. 그러나 꿈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 같은 건 없었다. 영리하고 잘 생긴 데다 성격까지 좋은 개를 만나는 건 그런 배우자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현실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다. 그런데 동동을 만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강아지 #반려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