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 제4화
동동과 나는 둘 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그러나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책상 앞에 앉아 시나리오를 쓰다가 고개를 들면 동동이 자거나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동동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고 잠이 깨면 멍하니 있거나 산책가자고 나를 쳐다보는 게 활동의 거의 전부였다. 그러나 나는 잠시 잠깐도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질 못했다. 방에서 내가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남이 만든 영화를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함으로써 내가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영화를 보는 건 즉각적이고 손쉽게 나를 방에서 탈출시켜 주었다. 그러나 탈출은 영구적이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는 두어 시간 후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시나리오 쓰기는 노력을 요하지만, 성공하기만 한다면 영구적으로 그곳에서 탈출하게 될 것이었다. 나는 시나리오 쓰기에 매달렸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개미 오줌만큼도 진전이 없었다. 하루에 반 페이지를 쓰고 두 페이지를 지우고, 다음 날은 그때까지 쓴 것들을 죄 지우고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런 날들이 언제까지나 계속됐고, 영원히 그 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버둥거리는 동안 동동은 책상만큼이나 고요하게 자기 자리에 머물렀다.
현자들은 말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자신에게 없는 것을 쫓지 말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라고.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만약 내가 원하는 것이 내게 없는 무엇이 아니라 매일 하고 있는 이것이라면, 나는 당장에 행복해질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이가 아주 가까이에 있었으니 바로 동동이다. 동동은 더 큰 집, 더 좋은 산책 코스 같은 거 원치 않는다. 동동에겐 지금 사는 집과 매일 다니는 산책 코스면 족하다. 동동이 원하는 건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매일이 똑같은 삶,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사는 삶인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삶이 만족스러울까? 아니라면 왜 그토록 악착같이 하고 또 하려고 하겠는가.
내게도 수십 년째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라도 하고 또 하고 싶은 게 있다. 매일 아침 커피 마시기. 나는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내일도 모레도 커피를 마시며 아침을 시작하고 싶다. 매일이 똑같은 날이길 원한다는 건, 하루 전체가 커피를 마시는 그 순간처럼 만족스럽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게 사는 법을 동동에게 배울 수 있을까?
그런데 스승의 사는 모습이 통 멋져 보이지 않는다. 맨날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어야 하는 데다, 밖이라고 나가봐야 변변히 걸을 만한 데도 없는 동네만 맴도는 처지가 아닌가. 제일 답답한 건 그런 자기를 가엾게 여겨 좋은 델 데려가도 좋은 줄을 모르고, 자기 집 자기 동네만 제일 좋은 줄로 여기는 것이다. 만약 동동과 말이 통했다면 세상은 넓고 좋은 건 많으니 제발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라고 귀가 따갑도록 설득하려 들었을 것이다.
나는 무엇이 좋으니 나쁘니 하고 판단하기를 한시도 멈추지 않는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동동에 대해서까지도. 그러나 동동은 자기 처지를 다른 누구와 비교하는 짓 따위 한 번도 해본 적 없을 것이다. 그게 사서 불행해지는 지름길이라는 걸 알아서 일부러 안 하는 건 아니고, 그냥 할 줄을 몰라서 못 하는 건데, 그 무능이 동동의 빛나는 능력이다. 만족할 줄 아는 능력. 인간에겐 허락되지 않은 능력이다. 그러나 정말 모르겠다. 밖에 나갈 때마다 남을 졸라야 하고, 나가서는 시끄럽고 더러운 도로변만 줄창 걸어야 하는 처지가 어떻게 불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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