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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의 온도, 내 심장은 컵희로 뛴다

by La Verna


한때 꽤 깊게 빠졌던 게 있다.

덕질이라고 부르면 좀 유치해 보일 수도 있는데,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파는 성향이 좀 있는거 같다.

그렇게 뭔가를 좋아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소중한..

이십대 시절, '커피'가 그랬다.

내일 세상이 무너져도 커피 한 잔은 마시고 눈감고 싶다-? 와 같은 약간 과장이지만,

그때의 마음을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진심'이었다.

요즘은 커피가 건강에 안 좋다는 말이 많다.

카페인이 자극적이다, 탈수가 생긴다, 심장을 너무 뛰게한다, 안압을 올린다..

그런 말들 앞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기왕 어떤 음식을 먹고 몸이 망가진다면 커피를 마시다 무너지는 방식을 택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젊은시절, 커피 전문점에서 알바를 꽤 오래 했었다.

에스프레소머신을 매일 만지는데도 커피에대한 흥미가 식질 않아서, 당시 유럽 유니버셜 커피 협회 바리스타 자격증을 1급까지 따버렸다.

돈이 있으면 누구나 딸 수 있다지만,

당시 열심히 연습하고 너무 '좋아해서 미쳐본 적' 있던 나의 흔적이다.

짐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자격증과 벳지를 발견했는데, 그때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파고들었는지 다시 떠올랐다. 배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땐 뭔가를 배운다는 게 그렇게 큰 결심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작은것 하나 시작하려면 조금 망설이게 된다.


예전에, 직장 일로 잠깐 에디오피아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곳에서 운좋게 진짜 ‘커피 예식’을 본 날이 있었다.

야외에서 꽃 장식을 펼쳐놓고, 커피 원두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향 속에서 정성스럽고 뭔가 절차있게 커피가 내려졌다.

꼭 어떤 커피의 신 앞에서 예를 올리듯 경건하게 커피 예식이 진행되었다.

그 모습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그날 이후 시다모와 아리차 원두에 빠져서, 직접 공수해오기도 했다.

그 정도로 커피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비슷하고.


몸이 필연적으로 음식때문에 언젠가 무너진다면,

그 원인이 인스턴트도, 당분도 아닌—그냥 차라리

커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집에서 Latte아트를 해본다.

별 거 아닌데, 그림이 예쁘게 그려지면

아직 감이 안 죽었다는 걸 혼자 확인하면서,

사소한 만족에 기분이 괜히 좋아진다.

그 시절의 덕질이,

지금의 나를,.. '엇? 나 인생을 그리 헛살진 않았잖아?' 하고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서 고맙다.


누군가는 그렇게 커피를 사랑한적이 있었다.

괜히 스벅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시켜놓고

누군가가 커피맛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속으로 조용히 고개 끄덕이며 말 안 하고 지나칠 때가 있다.

말 안 해도, 나만 아는 짜릿함이 괜히 올라온다.

아무도 몰라도 상관없지만,

'커피? 나 쫌 알아! 바리스타기도 하거든. 크크'


요즘 좋아하는 게 뭔지 묻는다면,

그때 잊고 살았던 커피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의 열정어린 커피 향을 다시 꺼내본다.

커피배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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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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