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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걷는 아이, 노인

by La Verna

노인은, 거꾸로 걷는 아이다.

인간은 처음엔 울음소리부터 우렁차게

세상에 나오고,

모든 것을 향해 앞으로만 달려가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발걸음은 서서히 방향을 바꿔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다시 자궁 쪽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한다.

되감기를 해버린것처럼

뒤로 걷기 시작한다.


“저… 지금… 자궁 쪽으로 U턴 중입니다…!?”


슬로우 모션으로 느린 걸음과 함께

한층 조심스러워진 손짓 발짓은

꼭 자신이 세상의 민폐라도 되는 양

작고 고요하게 슬며시 뒤로 걷는다.

그 되감기의 모든 동작은 조심스럽고

“어… 거기 원래 내 자리였는데요?” 하는 듯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이다.

그 속엔 인생의 무게와 노년의 약함이 묻어 있다.


재밌는 건, 실제로 되감기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자궁으로 들어가진 않지만

느낌상으로는

“되감기 중입니다~”라는 감성이

늙은 노인의 하루를 감싸고 있다.

웃픈것도 아니고, 애틋하다고 해야 할까.

80세 버전의 재롱잔치가 펼쳐지는 상황들.

어린아이가 깔깔거리며 넘어지는 대신

어르신은 “아이고야~”라는 탄식과 함께

무릎을 조심스레 구부린다.


육체는 점점 유아기의 아기처럼 연약함으로 회귀하지만

정신은 인생9단, 삶을 다 살아본 구도자이다.

그 조합은

어렵고도, 아름답고..

가끔은 피곤하기까지하다.


나는 이 시간을 직접 겪어봤다.

한솥밥을 먹고, 같은 지붕 아래서

80세, 90세, 때로는 100살을 넘긴 senior들과 함께

숨을 섞으며 살며 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건 구연동화처럼 해야 한다!’


말투도, 톤도, 제스처도, 표정도

어른아이를 마주하듯

그림책을 읽어주듯

약간 오버스럽고 유쾌하게 다가가야

비로소 마음의 문이 연다.


그래서 나름 결론을 지었다.

'노인은 유아다.

그러나 절대로 아이 취급은 하면 안된다.'


한 번은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어르신, 여기 조금만 앉아보실까요^^?”

말씀드렸더니

돌아온 대답은


“내가 애냐?”


…그 말 듣고

진심으로... 나는 까꿍하려다

까꿍 당했다.


그때 알았다.

이건 고도의 심리전이다..

내적 육아 + 외적 상징 존중 + 은근한 연극력을 압축해서

내적 까꿍은 필수, 외적 까꿍은 극금지.

이 세 가지가 있어야

80세넘은 분과 살아남기가 가능했다.

‘내적 까꿍’은 필수지만,

‘외적 까꿍’은 절대 보이지않게 하거나

더 티안나게 희화화해야한다.

내면은 부드럽고, 겉은 노련하게.

자존심을 세워드리며

아이처럼 다정하게, 그러나 존중을 잃지 않게.

약간은 광기스럽게.


그래서 나는 톤을 바꿨다.


어어어르신,

이 초오↘↗↘오오↗록색 슬리퍼↘가~~~~~ 정말~~

너어어어↗어↘↗무 잘어울리는거 같아요오↗오↘↗↘! 이거 한번↗신어봐요오↘↗요~~!!”


살짝 오두방정+ 천진한 목소리+ 약간의 연극을 하며.

약간 ‘솔’ 음으로 톤업한 다정한 연기.

사랑과 인내와 가벼운 자존심 붕괴가 적절히 섞인

다정한 도발이 필요하더라..


속으로 까꿍하되,

겉으로는 자존심을 세워드려야 하는 섬세한 기술.

자존심을 붕괴하며 철판을 깔고,

속으로는 까꿍을 외치되, 겉으로는

“어어어르신~ 요기 요 ~ 모서리 조심하셔야지요~~^0 ^

누가 우리 어르신 못 지나가게

이렇게 덫을 놨대 그려~~

오버아닌 오버를 해야 전달이되었다.

나를 깨부수고 버리는 작업이다.


가장 무서운 건, 신체 컨디션이다.

신생아는 작아서 잘 안넘어지고,

어르신의 낙상은 큰 사고가 된다.


그리고 완고함.

그건 고집이라기에는 너무 강해서

시간의 잔향으로 삼기로했다.

노화된 뇌세포의 자취가 남긴,

존엄의 흔적.

실제로 뇌의 노화가 고집처럼 나타나기도 한다고한다.

고집이라 쓰고, 노화의 잔향이라고 읽는 셈이다.


그러니,

연로한 노인을 대할때 정말 중요한 건

예의도 효도도 아닌,

속으로 '까꿍'할 수 있는 내적 여유와

'멘탈 관리'였던 것 같다.

내가 감정 조절을 못하면 끝이다.


“까꿍은 속으로만 하되, 티나지 않게

진심으로 연기하는 것.”

조급함을 덜어내고

나무늘보가 기분 좋은 날

같이 걷자고 말하듯

천천히,

인내와 상냥함을 유지하며. 유쾌한말씨로.


어어어↗↘르신↘↗↘~~”

‘솔’ 음정으로.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빙의한다.


이건 인간을 향한 마지막 예의.

마지막 배웅이다.

삶의 마지막 걸음을

존중과 웃음으로 전하는 기술.

또, 내가 함께

같이 거꾸로

뒤로 걷는 연습이다.


아주 천천히,

미소섞인 인내로.


그리고 오늘,

연습은 비 오는 거리 버스에서 또 한 번 시작되었다.

눈앞에 어르신이 존재감을 발산하셨다.


내적 까꿍 경보!.

'어른아이가 감지되었습니다!

앞에 계신 분은 노인이 아니라 아이입니다.

육아모드 가동하세요.'


오늘도 잠시

천천히 거꾸로 걷는 연습을 해보았다.

느리고, 천천히.

조금은 웃기고, 슬프게.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빙의했다

이것은 조금은 미리

나의 미래를 안아보는 연습이다.


언젠가 부모님이 연로해지시면,

나도 그들의 슬리퍼를 칭찬하며

속으로 까꿍하다가

“내가 애냐?”를 듣게되겠지.

그리고

그때 생각할 것이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어른아이에게 하는 말을 하고 있다니.'

그렇게 조용히 무너지고,

눈물 흘릴 날이 오겠지.


노인을 향한

다정한 배웅의 기술이자,

삶이라는 긴 여행의 '마지막 구간' 함께 걸어보는,

아름다운 사랑의 매뉴얼.

이것은 미리 몸으로 익히고, 훈련하며

나의 마음과 미래를 지키는

일상의 작은 연습같은 것이다.


어찌보면, 가장 유쾌한 육아이고,

어떻게 보면, 가장 조심스러운 환송회이다.


삶은 돌아가는 중이다.

느리게, 천천히.

그러다 언젠가—

그 길 끝에서 나도

거꾸로 걷고 있을것이다.

누군가의 내적 까꿍속에서

인생 되감기를 하며.


그래서 오늘도, 그 연습을 해보았다.

웃음섞인 인내와 목소리로,

평소 나답지않게

천천히

거꾸로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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