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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원 Dec 08. 2019

프랑스 총파업을 겪으며

크리스마스 연휴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프랑스 전역은 지금 비상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편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5일 하루에만 프랑스 도시 100여 곳에서 대규모로 열렸고, 100만명 가까운 인원이 집회에 참석했다. 마크롱 정부는 복잡한 퇴직연금 체제를 하나로 개편한다고 소개했지만,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법정 은퇴 연령 이후까지 일하면서도 덜 연금을 받는 상황이 발생하리라 많은 이들은 전망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는 이 퇴직연금을 민간 은행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지난해 '노란 조끼 시위' 규모에 버금가는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고, 지난주 목요일부터 대규모 파업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고속철과 간선철도가 대부분이 멈췄으며, 지하철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항공기 운행도 취소되었으며, 여러 학교와 병원도 파업을 선언했고, 심지어 에펠탑도 문을 닫았다. 회사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으면서, 차가 없는 나 같은 직원들은 회사에 오는 것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다니는 프랑스 회사는 파리 마레 지구에 위치하는데, 파리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곳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높은 간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회사에 출퇴근할 수 있는 위치에 사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해서 지난주 목요일 지하철 파업부터 나를 비롯한 일부 직원들은 자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원래는 목요일 하루만 파업이었는데, 금요일로 연장이 되더니 결국에는 다음 주 월요일까지 연장이 되었다. 이것도 다음 주 내내 지속될 거라고 많은 이들이 전망하고 있다. 프랑스는 12월 20일 이후부터는 대부분 크리스마스 휴가에 들어간다. 이때는 많은 회사들이 아예 문을 닫기도 하기에, 그전인 지금이 제일 바쁠 때인 것이다.


게다가 나는 다음 주 현재 맡고 있는 한불 합작 다큐 촬영을 위해 한국으로 장기 출장을 떠나기 때문에 지금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집에서 컴퓨터와 전화로 볼 수 있는 업무들이 있지만, 회사에서만 할 수 있는 업무들이 또 있기에 파업이 연장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한숨부터 나왔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어떡해서든지 회사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집이 회사랑 워낙 멀어서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되면 거의 하루치 월급을 택시비로 쓰게 된다. 할 수 없이 오전에 세 시간만 그것도 한정된 노선과 역에서 딱 몇 대만 운영할 예정이라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새벽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 새벽에 나가도 과연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토요일 아침 남편이 차려준 맛난 브런치를 먹으며 내 입에서는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다음 주도 파업이라는데.. 조금 불공평한 거 같아. 어차피 차있고, 택시 타도 상관없는 사람들은 전혀 영향을 안 받잖아.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법안에 반대해서 이런 파업을 하는 건데, 이것도 결국은 나 같은 뚜벅이 서민들만 영향을 받는 거잖아."


옆에서 평온히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남편은 내 말을 듣고는 갑자기 흥분했다. 남편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평소에는 흥분하는 일이 거의 없는 누구보다 평화로운 사람이다.


"무슨 말이야! 이게 본인들만을 위해 하는 파업이야?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위해 하는 건데.. 네 일상에 불평이 있다고 그렇게 말을 하면 안 되지."


이렇게 우리의 평온한 토요일 아침 브런치 시간은 격렬한 논쟁의 시간이 되었다.


"아니 파업이 잘 못 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파업의 이유인 연금개혁 반대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야. 다만 이런 파업으로 결국 당장 손해를 보는 건 또 서민이잖아. 아니야?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파리에 떨어져 살고 차도 없고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며 매일 출근을 하는데."


"나는 다행히 며칠은 자택근무로라도 대체할 수 있었지만. 청소하시는 용역분들은? 새벽부터 출근해야 하는데 대중교통이 안 다니면 이 추위에 몇 시간씩 걸어가서 출근하는데. 몇 시간씩 걸어도 안 되는 거리에 사는 분들은? 그런 분들은 출근 못하고 결국 월급에서 깎이는데, 이게 공평해? 파업하는 분들은 공공기관 소속이고 법으로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어서 파업을 아무리 길게 해도 월급은 다 받고 본인들 자리에 전혀 위험이 없지만, 그 파업 때문에 출근을 하지 못하는 더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


남편도 지지 않고 흥분하며 대답했다.


"그 사람들도 파업을 하거나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법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니야? 누구는 보호를 받는데 누구는 받지 못하니 불공평하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모두 다 그렇게 보호받을 수 있어야 맞는 거지. 그런데 지금 사회는 그렇지 못하잖아. 그게 잘못된 거고 그래서 이렇게 시위와 파업을 하는 거지. 그리고 너도, 지금 당장 네가 개인적으로 불편하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


진실은 늘 찔리는 법이다. 찔리면 그렇듯 나는 더 흥분하며 말했다.


"그래 이번에는 연금 개혁이라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이유를 위해 파업을 한다고 치자. 매년 꼭 이렇게 날씨 추울 때만 해왔던 수많은 지하철 파업들은? 솔직히 말해 본인들만의 이익만을 위해 하는 파업이 많았잖아. 이미 다른 직종보다 퇴직이나 연금 면에서 훨씬 더 많은 특별 정책을 누리고 있으면서."


남편은 내 말을 듣고 잠시 조용히 있다가 말을 이었다.


"재미있는 게 먼지 알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서민이 다른 서민이 조금 더 이익을 본다고 뭐라고 하고. 80만 원 버는 사람이 100만 원 버는 사람에게 뭐라고 한다는 거야. 그 사이에 정작 이 시스템의 가장 큰 혜택을 입는 이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쪽으로 모든 걸 만들어 가고 있지. 왜 재내들만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해? 이런 불만을 만들어내고 분열을 조장해서 어렵게 쌓아온 노동자들의 권리를 하나씩 없애는 거야 "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여러 생각에 잠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마크롱 대통령만 해도 마크롱과 장관들은 최근에 자신들의 월급을 30퍼센트나 인상했어. 일반 노동자들의 월급은 물가 인상과 상관없이 몇 년간 조금도 오르지 않았는데 말이지. 저 대폭적인 월급 인상은 어디서 충당할까? 우리 세금이야. 그렇게 불공평한 것들이 어느새 당연시되게 되는 거지. 그렇게 당연시된 것들이 모여 이 시스템을 만들어 낸 거고. 프랑스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지배하는 논리가 되었어. 그리고 더 이상은 이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물결이 지금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고. 아마 앞으로도 점점 더 멀리 퍼져나갈 거야."




뭐가 맞다, 틀리다를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쓰지는 않았다.


다만 이 대화를 통해 나는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기에, 브런치 다른 독자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개인적인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글로 쓰게 되었다. 남편은 내가 이 글을 쓰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워낙 여기서는 민감한 사항이고, 사실 프랑스의 문제이기 전에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두 가지 대립된 논리에 대한 논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대화지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지 않아야 될 글을 제외하면, 쓸 수 있는 글이 아니 정말 써야 되는 글이 점차 사라진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글로 남기게 되었다.


나 또한 입으로만 사회 정의, 함께 사는 세상을 말하고 사는 건 아닌지. 정작 일상의 불편도 참지 못하면서. 마음 한 곳에서는 모두가 잘 사는 세상보다는 나만 잘 사는 삶을 욕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되돌아볼 수 있게 한 햇살이 유독 빛났던 토요일 우리 부부의 브런치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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