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vu letar Feb 13. 2023

내가 어쩌다 99살이 되었나 (2)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그 주름 사이사이를, 검고 얼룩덜룩한 그 많은 점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축 처진 세모눈을 구기며 뭘 그렇게 보냐고 웃는다.


나는 때로 수분과 기름이 다 빠져 쪼글쪼글해진 할아버지의 피부가 경이롭다. 할아버지에게 새겨진 그 점들은 할아버지의 모든 발걸음일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두 분이서 가족을 서른 명으로 불렸다.


너무나 기이한 것은 나는 분명 할아버지가 남긴 흔적임에도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겠지.


할아버지는 자녀들이 한 주라도 뵈러 오는 것을 빼먹으면 상 도둑놈들을 키웠노라고 호통을 친다. 곧 팔순으로 노인이 다 된 큰아버지나 막내인 내 아버지에게나 그 호통은 공평하다.


 아버지. 우리도 이제 늙었어요.


그럴 만도 하지. 그 노인네 참. 할 수도 있으나.

글쎄. 나는 할아버지와 가깝지 않아서 오히려 그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제 유튜브에서 실버타운 얼마예요?라는 제목의 영상을 봤다. 영상에서는 우리 할아버지보다 15년은 어린 노인이 나와 실버타운의 내부를 소개했다.


노래방에 서예실에 요가수업에 댄스수업에. 기원에 으리으리한 북카페에- 없는 여가시설이 없었고, 별관엔 으리으리한 메디컬 타운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노인은 청소라곤 빗자루 한 번 쥐어본 일이 없다며 웃었다. 한참 그걸 보고 있자니 나도 거기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가 들 정도였다.


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재산만 안 물려줬다면, 지금쯤 실버타운에 들어가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고도 남았을 텐데.


남은 여생 좋아하는 자전거 타고 서예하고 캘라그라피를 배우면서, 손수 할머니까지 케어하는 일 없이 여유 자적하게 지냈겠지.


심술이 날로 높아지는 것으로 보아 할아버지는 마음속으로 당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하시는 거겠지.


할아버지도 몰랐을 거다. 당신이 99세까지 이렇게 정정하실 줄은.


할아버지는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서 떨리는 손으로 국을 끓이고 백간장으로 대충 간을 맞추고, 할머니를 일으켜 세워 민트색 앞치마를 입힌다.

할머니는 얼마 전까지도 잘 다니던 주간 보호센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사내놈들이 당신을 자꾸만 쳐다본다나.


할아버지는 그 기막힌 얘기에 픽 비켜나가는 웃음을 웃고, 할머니가 국물을, 반찬을 얼마나 흘리는지 살핀 후 다시 설거지를 한다.


가는  없이, 보는 것 없이, 더 이상 이룰 것도 없이.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지난한 매일이 이어지겠지.


할아버지는 그 긴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할까.






할아버지는 아직도 나무 제기에 홍동백서를 지켜가며 제사를 지낸다.


1년에 13번인 제사를 여태껏 유지하고 있으며 아직도 '제주'의 자리를 놓지 않고 있다.


명절이 되면 우리들은 그 광경을 볼 수 있다. 사촌오빠가 술잔을 내밀면 할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그것을 받아 향 위에서 세 번 돌리곤, 늘어진 고무줄 같이 주름 잡힌 목소리로 희망이 가득 넘치는 어쩌고 하는 기도를 시작한다. 나는 단 한 번도 희망이 가득 넘치는 이후를 제대로 알아들은 적이 없다.


이제 큰 아버지는 팔순을 바라보지만 아직도 할아버지로부터 제주의 자리를 물려받지 못했다.


식구들이 조상들이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을 끝까지 연다. 나는 활짝 열린 창문과 그 밖으로 이어진 파란 하늘을 보며, 조상들이 올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부지는 그 연세에도 뭘 그렇게 끝까지 제사를 지키는지. 이제는 좀 줄여도 되잖아. 그 연세에. 희망이 가득 넘치는 그다음 뭐라고 하시데. 너도 못 알아듣지. 웅얼웅얼 웅얼웅얼. 그걸 뭘 굳이 굳이, 사회 보는 자리는 내놓지두 않구. 이제는 형이 할 때도 됐지. 큰 형수도 이제 노인이야. 고생을 좀 시켜야지. 요즘엔 피자에 치킨 놓고도 제사 지낸다는데. 이걸 여기 놔라 저걸 여기 놔라, 너희 할아버지가 왜 저러시냐. 점점 더. 에이 노인네 참.


어쩌면 할아버지는 두려운 게 아닐까. 이제 남은 돈도, 시간도 거의 없으니. 제사 때 만이라도 자식들에게 더욱 정정한 모습으로, 돌아간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몸소 보이고 싶으신 게 아닐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상 앞에서 무릎 꿇던 모습을, 그 앙상한 다리를 생각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낙엽 한 장 달려있지 않는 가로수가 끝없이 이어졌다.

 


 저렇게라도 하시고 싶은 거야. 돌아가셔도 자식들한테 밥이라도 얻어드시려고.


아빠는 그렇게 말하곤, 내게 들키지 않으려 목에 걸려있던 마스크로 재빠르게 눈물을 닦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어쩌다 99살이 되었나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