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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희 Mar 09. 2023

수고했다는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나?

소송 준비하려고 로스쿨에 갔습니다.

"소송할 거예요? " 임원 H는 처음부터 공격적인 말투였다. 당황한 나는 "회사가 대응하는 걸 봐서 결정해야겠죠"라며 답변을 미뤘다.


"로스쿨 간다던데... 늦은 나이에 공부한답시고 괜한 고생하지 말고 남자 하나 자빠뜨려서 시집이나 가세요. 허허. "


뭐라고??!


'지금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 '싶었다.


 6년을 아나운서로 근무한 방송국을 퇴사하는 날이었다. 임원 H에게까지 인사를 가는 건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팀장이 인사는 하는 게 맞다고 해서 함께 찾아갔는데 이런 봉변을 달할 줄은 몰랐다.


그저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빨리 끝나겠지 생각했는데... "수. 고. 했. 다"는 그 형식적인 말 끝끝내 듣지 못했다.


나에게 모멸감을 주려고 '로스쿨 진학'을  '괜한 고생'으로 평가절하했다. '늦은 나이에 시집을 못 간 여성'으로 나를 가리킨 것 역시 그러한 의도였다.


그런 임원 H에게서 나는 두려움을 읽었다. 내가 소송을 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 그로 인해 연임에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을게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 급급해 걸림돌 같은 나를 짓밟고 싶은 마음을 대놓고 드러냈다.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못난 인간의 천박한 발언이었다.


 한때는 방송을 직접 만들기도 했던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성희롱적인 표현을 일부러 골라서 공격한 상황이 참 역겹고 한편으로는 슬펐다. 6년을 그 회사를 위해 일한 직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메인뉴스인 8 뉴스를 3년 6개월 진행했고 한때는 회사의 얼굴이라며 그동안 헌신했던 공로를 인정해 공로패를 받았던 나의... 퇴사일 풍경이 이럴 줄은... 정말 상상 못 한 일이었다.


그 방송국은 나를 비롯해 무려 3명의 아나운서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내 입사동기 A는 4년, 다른 아나운서 B는 6년, 나 역시 6년을 근무했지만 회사는 프리랜서라며 근로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가장 먼저 문제 제기를 한 A는 회사와 소송 중이었고, B와 내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회사는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내가 회사를 퇴사하겠다고 팀장을 찾아갔고 로스쿨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퍼졌으니 그들은 치밀하고 무서운 x로 나를 생각할 법도 했다.


분장실에서 챙겨주셨던 퇴사 꽃다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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